‘나’의 눈에 비친 사회주의 ··· 채만식의 치숙(痴叔)

보름달
쟁반같이 컸던 보름달이 많이 작아졌다.

정월 대보름 저녁 황금빛 보름달에 반해 집을 나섰다. 산책로로 접어드는데 유치원을 운영하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많던 논밭을 다 팔아먹고 부유하던 집안을 거덜 낸 큰 오라비라는 작자가 지난 설에 못 온 막냇동생이 이번에도 안 보이자 욕을 하기 시작하는데, 제 몸에 묻은 똥은 안 보이나 싶어서 치미는 화를 꾹꾹 누르느라 가슴이 답답하단다. 엄마 생신이라고 친정에 갔다가 마음이 상했던 모양이다.

집에 왔는데도 여전히 속이 후끈거린다며 시원한 맥주라도 한잔 마시면 가라앉을 것 같으니 얼른 나오라고 권주가를 부른다.

안 그래도 <치숙>을 읽고 머릿속에서 똥 묻은 개와 겨 묻은 개가 다투던 차에 남의 집 불구경으로 그럴싸한 실마리를 얻은 셈이니 나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

1938년에 발표된 단편소설 채만식의 <치숙>은 일본인 상점의 사환으로 일하는 ‘나’와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지식인 ‘치숙’ 이야기다.

치숙
주인공 나의 시각에서 보면 치숙은 글자 그대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아저씨다.

ㅡ우리 아저씨 말이지요? 아따 저 거시기, 한참 당년에 무엇이냐 그놈의 것, 사회주의라더냐, 막걸리라더냐, 그걸 하다 징역 살고 나와서 폐병으로 시방 앓고 누워 있는 우리 오촌 고모부 그 양반…… 머, 말도 마시오. 대체 사람이 어쩌면 글쎄…… 내 원! 신세 간데없지요.
자, 십년 적공, 대학교까지 공부한 것 풀어먹지도 못했지요, 좋은 청춘 어영부영 다 보냈지요, 신분에는 전과자라는 붉은 도장 찍혔지요, 몸에는 몹쓸 병까지 들었지요. 이 신세를 해가지굴랑은 굴 속 같은 오두막집 단칸 셋방 구석에서 사시장철 밤이나 낮이나 눈 따악 감고 드러누웠군요. ㅡ

일방적인 비아냥이기는 하지만 틀린 소리는 아니다. 아내가 어렵사리 번 돈으로 밥이나 축내며 허구한 날 방구석에 누워서 머릿속엔 사회주의 생각뿐인 이 양반을 비웃는 나는 남의 재물을 함부로 빼앗는 불한당과 다름없는 사회주의 사상이 소름 돋도록 끔찍하다.

보통학교 4학년을 겨우 마치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상점의 사환으로 일하는 나는 식민지 상황을 수긍하고 오히려 그것을 기회로 삼아 기꺼이 일본에 동화되고 싶은 스물한 살 청년이다.

ㅡ내지 여자가 참 좋지 뭐. 인물이 개개 일자로 예쁘겠다, 얌전하겠다, 상냥하겠다, 지식이 있어도 건방지지 않겠다, 조옴이나 좋아!
그리고 내지 여자한테 장가만 드는 게 아니라 성명도 내지인 성명으로 갈고, 집도 내지인 집에서 살고, 아이들도 내지인 이름을 지어서 내지인 학교에 보내고…..
내지인 학교라야지 죄선학교는 너절해서 아이들 버려놓기나 꼭 알맞지요. 그리고 나도 죄선말은 싹 걷어치우고 국어만 쓰고요.
이렇게 다 생활 법식부텀도 내지인처럼 해야만 돈도 내지인처럼 잘 모으게 되거든요ㅡ

제 몸에 묻은 똥이 비단옷인 줄 아는 이 청년의 일본에 대한 어리숙한 맹신이 딱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작가는 짧은 단편소설을 통해 이상뿐인 사회주의를 철저하게 희화화시켜 조롱하는 한편 비굴하게 현실에 야합한 이기적인 개인주의 또한 따끔하게 꼬집는다.

주인공 ‘나’가 주워들은 사회주의란 그야말로 불한당이나 다름없다. 부자가 가진 것을 가난한 사람들과 고르게 나눠 먹는 것이 경우에 맞는다는 사회주의의 논리는 불한당의 사고일 뿐 아니라 그렇게 되면 게으른 놈은 점점 더 게을러져 부자가 가진 것만 뺏어 먹으려 들 테니 세상이 온통 도적놈 판이 될 것이며, 그나마 부자들이 모아둔 걸 다 뺏기면 그때는 이 세상 망하는 거 아니냐는 ‘나’의 걱정은 오래전 소설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2020년을 사는 내게도 작금의 대한민국이 놓인 현실은 이러다 나라 망하는 거 아닌가 싶을 만큼 걱정스럽고 불안하다.

경기 둔화로 이미 세수가 펑크 나기 시작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야기(惹起)한 경기 침체로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텐데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자들이 둘러앉아 어떤 작당을 하고 있을지 눈에 선하다.

어느 정당의 대표는 만 이십 세가 되는 청년 모두에게 무조건 3천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청년 기초자산 제도를 총선 공약 1호로 내걸었다. 재원은 상속 증여 보유세 등 부자들에게 세금을 걷어서 마련하겠단다.

부를 세습 받지 못한 청년들의 자립기반을 위해서라지만 그야말로 소설 속 주인공이 지적한 바로 그 불한당이 아닐 수 없다.

82년 전에 쓰인 소설 속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온 활자들이 보란 듯이 세상을 활보한다. 총선을 앞두고 이런 불한당식 공약들이 난무한다.

이데올로기가 특정 정당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보수니 진보니 민주니 정의니 정당마다 각각 다른 기치를 내건 듯하지만, 그것들은 패거리를 지어서 코에 걸었다가 귀에 걸었다가 필요에 따라 요리조리 야합하는 말뿐인 이념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 새 정권의 포퓰리즘(populism) 정책은 도를 넘었다. 만 이십사 세 청년에게 나눠주는 지자체의 청년수당을 곧 받게 될 딸아이는 한 달쯤 알바를 안 해도 되겠다며 여행 갈 궁리를 한다. 그뿐인가 올해부터 노령연금을 받게 된 언니는 신바람이 나서 한턱내겠다고 수선이다.

학비며 월세는 물론, 월급이 적어도 수당 주고, 취업이 안돼도 수당 주고, 백수로 오래 지내면 또 수당 주고······. 숫제 일하지 말라고 부추기는 꼴이다.

우리 영화 <기생충>이 전 세계 영화제를 휩쓸었다. 빈부격차 심화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자본주의의 실상을 너무도 잘 묘사한 영화라며 전 세계인의 공감을 불렀다. 은연중에 내 딸도 내 언니도 부자의 세금에 빌붙은 기생충이 되어 가는 것 같아 섬뜩하다.

일부 해외언론은 조심스레 지금 대한민국의 정부와 집권 여당이 하는 정책들이 순식간에 몰락한 베네수엘라와 판박이라고 우려한다.

1998년 집권한 베네수엘라의 좌파 사회주의 정권은 반미와 무상의료 무상교육 저가주택 등 각종 포퓰리즘 복지정책을 남발했다. 차베스와 마두로는 석유자원에만 의지, 중장기적 거시경제정책을 등한시해 세계 제1의 산유국이자 남미에서 가장 부유하던 나라를 순식간에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시켜버렸다. 이미 나라를 버리고 떠난 난민이 340만을 넘는다.

술자리가 익어간다. 친정집 치부로 시작한 친구의 넋두리는 이내 국가에 대한 배신감으로 이어진다.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지금까지 35년을 오직 유아교육에만 매진해온 친구다. 재작년부터 시끄럽던 ‘유치원 3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사립 유치원은 앞으로 사사건건 정부의 통제를 받게 되었다.

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게는 수억 원에서 많게는 수십억 수백억을 들여 평생을 일궈온 유치원을 공립화라는 명목하에 점차 나라에서 가져가겠다는 것이 유치원 3법의 내막이다. 명목은 국가지원금 유용을 막는다는 취지지만 잘 들여다보면 이 또한 불한당 짓이다.

“안 그래도 저출산으로 매년 원생이 줄어 몇 년 안가면 문 닫는 유치원이 속출할 텐데 이 마당에 유치원을 국·공립화하려는 속내가 빤히 보인다”라며 치를 떠는 친구는 그저 허깨비처럼 몇 년 더 일하다 자연스레 폐원절차를 밟게 될 것 같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고 시장경제의 원칙을 따르는 나라이다. 그런데 이런 명백한 사유재산 침해를 밀어붙이는 이 정부의 사고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무슨 돈으로 집을 살 것인지를 묻는 건 로또가 되어버린 주택 청약 가점 때문이라지만 집 판 돈을 어디다 쓸 것인지를 추궁받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 지금 우리가 사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이다.

다 같이 잘사는 나라
빈부차가 없는 나라

이상만을 추구하는 사회주의자들은 수신제가부터 하고 치국평천하를 꿈꿨으면 좋겠다. 제 몸에 묻은 똥내도 못 맡으면서 깨끗한 척 잘난 척하는 인간들이 정말이지 꼴사납다.

두 시간 이상 이런 얘기를 안주 삼으니 맥주로 친구의 화를 식히기는커녕 오히려 기름을 부은 것 같다. 안 되겠다 싶어 분위기 반전을 위해 아카데미 시상식 얘기를 꺼냈더니 금세 화를 삭이고 감동으로 흥분하는 친구를 보며 얘가 원래 이랬나 싶어 씁쓸하다.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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