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전자 이야기〈3〉 문 영감

고물 리어카

그는 아침에 동양 전자를 찾는 첫 번째 손님이다. 그는 항상 9시에서 10시 사이에 오토바이를 타고 동양전자를 방문한다.

“붕~붕~”오토바이 소리를 멈추고 그가 동양전자 앞에 서면 콧수염이 덥수룩한 동양전자 형님은 지팡이를 짚고 다리를 절름거리며 가게 앞으로 나온다.

“문 영감, 왔어요?”
“어이, 동양전자 어제 돈 많이 벌었다고?”
“돈은 무슨 돈, 돈 좀 만져 봤으면 소원이 없겠네요.”
“아니, 대전 돈은 동양전자가 다 번다고 소문이 났는데 왜이래”

얼굴은 늙었으나 몸은 다부진 문 영감과 동양전자 형님은 이런 대화를 나누며 바로 앞에 있는 슈퍼로 들어가 여름엔 아이스크림, 겨울엔 따뜻한 커피를 마신다. 이들이 오랫동안 지켜온 관행이다.

그들이 아이스크림이나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내가 밖으로 나온다. 출근시간이 늦은 학습지 선생이다 보니 아침식사를 하고 밖에 담배를 피우러 나오는 시간과 문 영감이 동양전자를 방문하는 시간이 얼추 비슷한 탓이다. 대문을 열고 나가면 항상 그렇듯이 나의 눈은 동양전자로 향하고 그러다 보니 문 영감을 보게 된다.

눈이 문 영감과 마주치면 그는 “성훈이 아빠 아닌가?” 하며 나를 부른다. 동양전자 형님은 나에게 그들이 먹던 것과 같은 것을 권하고 나는 여름 아이스크림 혹은 겨울 커피를 손에 쥐고서 그에게 인사를 한다. 이런 일은 동양전자가 있는 사거리에 우리 집과 슈퍼가 함께 있다 보니 지극히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문 영감은 나와 인사를 나눔과 동시에 이 동네 저 동네 젊은 과부 이야기로 너스레를 떨기 시작한다. 그의 말 속에 과부란 과부는 다 끌려 나오는데 마치 오늘을 위해 과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 듯하다.

매번 이야기에 등장하는 과부만 달라질 뿐 문 영감이 하는 이야기의 핵심은 나에게 고생 그만 하고 그 반반한 얼굴로 한 명 꿰차라는 말이다. 문 영감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기분이 언짢아지기 일쑤여서 처음에는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런데 이 문 영감의 고집이 보통이 아니어서 한쪽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버리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는 것을 깨닫고부터는 그냥 무시하게 되었다.

동네 만물장수인 문 영감의 장기 가운데 하나는 동네 과부란 과부는 손금 보듯이 다 알고 지낸다는 것이다. 여기저기를 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홀아비, 과부, 총각, 처녀 등 남의 결혼사정을 다 꿰는 듯했다. 거기다 입까지 방정이니 중매를 서달라고 주문이 오는 모양이었다.

몇 번 중매를 섰는데 그럭저럭 잘되었고 그 사실을 자기가 광고하고 다닌 터에 동양전자 형님도 어디서 좀 모자라는 여자를 데리고 와 석 달 정도 살았다.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그 여자의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깨지고 말았지만. 동양전자 형님은 당시 신혼의 달콤함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여자가 정신만 조금 온전했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을 것이라고 나에게 이야기하곤 하였다.

문 영감은 그렇게 한바탕 너스레를 떨다가 힘이 떨어지면 바람처럼 오토바이를 타고 사라진다. 물론 좋은 중고물건을 동양전자 형님에게 값싸게 사가지고. 그리고 근처 고물상에 가서 거기서도 비슷한 일을 되풀이 한다.

문 영감이 그렇게 실없는 행동을 해도 동양전자 형님은 문 영감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장사를 하려면 이런 영감 하나가 꼭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에게서 문 영감의 첫인상은 쉽게 이야기해 “뭐 저런 **같은 놈이 다 있어”였다. 그러나 나를 향한 그의 비꼬는 듯한 그의 말이 그리 틀린 이야기는 아니어서 말없이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정이 들고 호감이 생겼다.

동양전자 형님은 처음부터 “문 영감 잘 따라붙어 문 영감이 은퇴하면 그 자리 꿰차”라고 했지만, 문 영감은 이 장사도 한 물 갔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곤 했다. 문 영감의 그 말은 뒷날 중고전자 경기가 나빠지면서 맞는 말이 되었다.

이런 문 영감을 신뢰하게 된 것은 내가 그에게 두 가지 도움을 받고부터였다.

첫째는 내가 그의 도움으로 고물장사를 하게 된 일이다. 사람들은 내가 왜 고물장사를 시작했었는지 갸우뚱하겠지만 시기를 놓쳐버린 내게 세상의 밑바닥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생겼었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문 영감에게 고물가위 치는 법, 고~물~ 소리 지르는 법, 집에서 고물 가져오는 법 등의 기초를 배웠고, 그런 생활 속에서 나의 정체성과 사회에 대한 자생력을 얻게 되었다.

두 번째는 새벽에 하는 우유배달 일이다. 겨울이 되면서 배달원을 구하지 못해 힘들게 되었을 때 문 영감의 조언 덕분에 구할 수 없었던 배달원을 빨리 구해서 큰 손실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문 영감은 요새 말하는 소위 틈새시장의 달인이었다. 그는 사람들 속에서 큰 유명세는 타지 않았지만 지역에서는 유지 아닌 유지로서 살아가는 인물이었다.

문 영감은 자기 집 한쪽 방에 이곳저곳에서 가져온 전자제품을 잘 고쳐놓고 마진 좋게 넘기는 장사꾼이었고, 술은 안 마시지만 간혹 담배 한 대로 속을 다스리면서 돈 되는 일이라면 어디든 바람처럼 나타나는 괴짜였다.

자식은 셋이 있는데 하나는 선생님, 하나는 공무원, 막내는 대학생이니 자식농사도 그 정도면 잘 지은 편이었다.

동양전자 형님은 문 영감에게 그 흔하다면 흔한 아이스크림이나 커피 한 잔 얻어먹지 못했지만 문 영감은 오토바이 한대 끌고 월남전 수색대마냥 이리저리 수색하면서 자기 먹을 것은 꼬박꼬박 잘 챙겨먹었다. 그런 문 영감이 어떤 때는 부럽고, 어떤 때는 샘이 나기도 하였다.

원체 성격이 무사태평하다보니 그가 월남전에 참전했었다는 그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가 월남전 참전용사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던 어느 날 문 영감에게 물어 보았다.

“사람은 죽여 본 적 있어요? 그 전쟁에 사람 많이 죽었는데”
“아니, 나는 후방에서 수색근무를 하느라 총 한번 쏘아본 적이 없었어. 수색 중 사고로 두 명이 죽은 것 말고는 별다른 일이 없었지”

그가 먼 하늘을 응시하면서 그렇게 주억거릴 때 나도 저렇게 운이 좋아 봤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총 한번 안 쏘고 연금을 꼬박꼬박 타먹는데 배가 안 아프다면 거짓말이다.

‘인생은 문 영감처럼’
동양전자 형님과 나는 ‘인생은 문 영감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에 별다른 이견없이 의견의 일치를 봤다. 문 영감은 그 정도로 우리의 부러움을 샀던 대상이었다.

어느 날 문 영감이 나에게 장사 가는데 따라가자고 했다. 나는 동양전자 형님의 손짓이 있어 얼떨결에 따라 나섰다. 문 영감은 몇 군데 고물상을 둘러보면서 물건 사는 법을 가르쳐주더니 어떠냐는 것이다. 별로 어렵지 않아서 나는 어렵지 않다고 이야기 하니 문 영감은 웃으면서 이 업종은 하향세니 그냥 구경만 하고 직장이나 구해서 다니라고 했다. 아마 나의 속마음을 읽은 듯 했다.

문 영감의 말에 약간의 좌절감도 느꼈으나 지금 생각해보니 문 영감은 나에게 진실을 이야기 한 것이고, 문 영감이 나에게 얼마나 신경을 써주었는지를 알 것 같다.

얼마 뒤 문 영감이 어느 병원 청소부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만나보지는 못했다. 나는 그 뒤 혼자 몇 달을 이 업종에서 장사 했지만 문 영감의 말처럼 하향세라 손 털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야 대기업에서 중고전자제품을 다 수거해가는 삭막한 시절이지만, 그 당시 경제의 한 틈새에서 자그마한 역할을 했던 그들에게는 그나마 따뜻한 정과 푸근한 인간미가 있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저기 고물 리어카 한대가 지나간다. 그러나 그 문 영감처럼 오토바이에 선풍기 몇 대를 실은 사람은 없다. 고물상들은 지금도 외각지에서 고물들을 싣고 와 쌓는다. 그러나 그때의 구수한 커피 맛은 점점 잃어간다.

김민석

대전 사는 50대 직장인.
세상살이에 어디 허물없는 사람 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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