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도현의 전원일기(6) 봄나물로 차린 건강밥상

텃밭

풀 한포기 없는 밭은 뭐든지 심어보고 싶은 의욕을 강하게 자극한다.마트에 가면 원하는 찬거리를 손쉽게 얻을 수 있지만 요즘 같은 봄철엔 밭이나 들에 나가면 나물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이 지천이다. 파란 하늘 아래서 봄볕을 쬐며 새들의 지저귐 소리도 들으면서 직접 채취한 봄나물을 맛보는 것은 전원생활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농사방식이 나와 다른 옆 밭의 주인은 올해도 일찌감치 밭 전체를 시원스레 트랙터로 갈아엎고서 펜스를 새로 치고 땅콩을 비롯한 여러 작물을 심을 준비를 한다. 이런 모습은 농촌의 일반적 풍경이랄 수 있는데 풀이 많으면 심신도 고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처럼 보인다.

저녁 밥상에 나물 몇 가지를 올릴 요량으로 손에 호미와 비닐봉지를 들고 밭으로 나왔다. 하얀 냉이꽃, 노란 꽃다지 꽃, 파란 꽃마리 꽃, 노란 민들레 꽃들이 여기저기 피어 있다.

봄나물을 채취하면서 바랭이나 환삼덩굴과 같은 풀들은 눈에 뜨이는 대로 솎아냈다. 이것들을 방치하면 순식간에 땅을 점령하기 때문이다.

머위
머위는 일부러 재배하지 않고 산자락이나 밭둑 같은 빈 땅에 심어두면 알아서 잘 자란다.

십여 년 전 집 뒤에 동네 창고를 짓느라 오십 평은 족히 넘을 머위밭이 사라져버린 아쉬움 때문에 집에 있던 머위를 밭둑에 심어놓았다. 머위는 어린순을 채취하여 무치면 쌉쌀한 맛이 일품이다.

원추리
원추리의 잎은 나물로 뿌리는 한약 재료로 쓴다.

원추리나물은 꽃이 아름다워 먹을 생각을 하지 못했던 봄나물이다. 근심을 잊게 해주는 풀이라고 해서 ‘망우초’라고도 하는데 근심은 하루로 족하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 같아 더욱 마음이 간다.

어린 대파 무침과 비슷한 맛으로 스트레스 해소와 우울증에 효능이 있다는 이 나물 맛을 잊지 못하여 다시 찾게 된 것이다.

망초
망초는 일제시대에 들어와 퍼진 까닭에 나라가 망하니까 들어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망초는 독특한 향기, 달짝지근한 맛과 식감이 좋은 나물이다. 지난가을 망초를 넣고 끓인 국맛에 반하여 다음번에는 채취를 많이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

부추는 일을 하다 간혹 뜯어 먹기도 하는데 첫 물이 가장 달고 맛있다.  이 부추로 오이소박이를 담가달라고 아내에게 말할 생각이다.

밭 옆에 있는 산으로 갔다. 어렸을 때 날마다 뛰어놀았던 추억의 장소다. 놀다가 배가 고프면 준비해간 고추장에 ‘무릇’이라는 산나물을 찍어 먹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엔 무릇을 ‘물국’이라고 불렀다. 그곳에 가보니 여전히 많은 개체가 자생하고 있어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아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것들이 있다. 두릅, 돌나물, 더덕 순, 가죽 나무순, 찔레나무 순 등 다양하다.

‘봄볕에 며느리 내보내고 가을볕에 딸 내보낸다’라는 속담이 있다. 봄볕의 자외선이 강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조금만 부지런하면 자연이 주는 풍성한 혜택들을 대가 없이 누릴 수 있는 계절인데 선크림 듬뿍 바르고 나가보면 어떨까.

어느덧 나물들이 두 봉지에 채워졌다. 집에 와보니 현관 앞에 쪽파가 종이박스에 담겨 있다. 큰 집에서 두고 간 모양이었다. 파김치를 담으면 좋을 법하여 어머니에게 파를 다듬어달라고 했다.

쪽파를 다듬고 본격적으로 나물 무침에 도전했다. 저녁 먹을 시간이 임박하여 속도를 내야 했으므로 3구 가스레인지에 세 개의 냄비를 동시에 올렸다. 물이 끓는 순서에 따라 망초, 원추리, 머위를 데친 후에 여러 가지 양념을 넣어 조물조물 무쳤다.

요리는 초짜인지라 나물은 달라도 조리법은 대충 똑같이 했다. 그래도 각각의 나물에서 나는 맛과 향이 그럴싸했다. 그 사이에 어머니는 데친 파를 둘둘 말아 초고추장에 찍어 먹을 수 있게 만드셨다.

이렇게 해서 저녁상 준비를 마치니 식탁이 제법 풍성하다. 봄나물은 면역력 강화, 스트레스 완화, 피로회복, 혈액순환, 해독작용, 성인병 예방 등 여러 효능이 있다 하니 건강밥상이라 할 수 있겠다. 여럿이 맛있게 먹다 보니 나물 무침 세 접시가 금세 깨끗이 비워졌다.

이런 나물을 봄에 먹을 수 있는 이유는 잎이나 순이 연하기 때문이다. 억세고 뻣뻣하면 먹을 수 없어 지금이야말로 가장 몸값이 높을 때이다. 이때가 지나면 나물에서 풀로 급기야 잡초로 취급 당하는 성가신 존재가 되고 만다.

이젠 시장에 팔기 위해 나물을 캐는 사람들이 간혹 보일 뿐 시골에서도 나물 캐는 풍경을 보기가 쉽지 않다. 동네 사람들과 여기저기서 수다를 떨며 나물을 캐던 옛 시절이 그립다.

제철 나물로 배고픈 식구들 먹이려고 무침도 하고, 국이나 죽도 끓이고, 나물밥도 해 먹던, 사람 냄새나던 시절. 이제 그분들은 노인이 되었고 젊은 사람들은 일하느라 바쁘다.

시골에 사는 우리 아이들조차 나물을 잘 모른다. 앞으로 기회 있을 때마다 이름도 가르쳐주고 함께 나물도 캐는 추억을 만들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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