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도현의 전원일기(7) 세종시 로컬푸드 싱싱장터의 초보 장사꾼

싱싱푸드 로컬장터

한 달간의 혹서기 휴장기간이 끝나고, 드디어 하반기 장이 열렸다. 생전 처음으로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팔아본 나는, 다시금 설레는 마음으로 장터에 나갔다. 이젠 나도 어엿한 로컬푸드 생산 농가다.

로컬푸드를 알게 된 것은 재작년, 그 후 몇 차례 소정 교육을 받고 3호점 입점 예정자가 되었다. 친환경적으로 재배한 싱싱한 농산물을 직접 소비자와 연결할 수 있는 길이 없을까 오랫동안 생각해오던 차에 마침 좋은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평소 친환경농업, 자연농법을 주창하며 힘들게 농사를 지어왔다. 나에게 농사는 풀과의 전쟁이면서 동시에 대화이기도 하다. 이는 운동 삼아 할 수 있는 작은 농토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난 5월 초, 교육을 받고 처음 장터에 나온 날을 잊을 수 없다. 농사만 지었지 직접 판매는 처음 해보는 일이라 모든 것이 서툴렀다. 매대 앞에 선 몸은 쭈뼛쭈뼛하고, 물건 설명은 모깃소리처럼 작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은 직접 재배한 채소를 수북이 쌓아놓고 손님들과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누며 판매하는 것이었다.

싱싱푸드 로컬장터

내가 가지고 간 것은 볼품없었다. 쪽파, 부추, 열무, 개망초가 전부인데 그나마 양도 적었다. 하지만 그중 밭에서 뜯어온 개망초는 회심의 작품이었다. 대략 20여 생산농가 중에 개망초를 파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장사는 초보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나물을 소개한다는데 의미를 두니 왠지 모를 사명감이 불끈 솟아올랐다.

“이건 성가신 잡초가 아니죠. 나물로 먹고, 장아찌로 담가도 아주 맛있습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 이후에도 밭에서 자라는 순서에 따라 명아주, 참비름, 쇠비름 등을 뜯어다가 내놓으면서 자칭 ‘나물 전도사’가 된 듯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장터에서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면, 여러 가지 일로 인하여 미안하기도 하고 마음이 상하기도 한다. 맛이 덜 들거나 벌레 먹은 복숭아를 판 일은 두고두고 후회스러웠다.

상추를 맛있게 먹었다고 거듭 고마움을 표했던 고객과 명아주 나물을 3주 연속으로 샀던 고객에게 본의 아니게 하자 있는 복숭아를 팔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 후에는 맛에 대한 평가를 솔직히 말하고, 리콜을 대비해 명함도 건네주었다.

대개 마음씨 좋은 분들이 많지만, 조금 얄미운 분도 있다. 뻔히 보이는 얕은 수로 더 많이 가져가려는 사람, 물건을 이리저리 만지며 불평 섞인 투로 말하는 사람, 터무니없이 물건값을 깎으려는 사람···.

이 물건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수고를 했는데 그러나 싶어 야속하기도 했다. 사실 과일 하나가 매장에 놓이기까지는 보통 험난한 여정을 통과한 게 아니다. 수백수천의 꽃과 열매를 솎는 과정 중에서 간택되어 살아남았고, 온갖 병충해와 싸워 향기로운 과일이 되었다. 그뿐 아니라 추위, 더위, 강한 비바람도 견뎠다. 내가 먹는 과일은 이 모든 과정에서 선택되고 이겨낸 그야말로 보통 과일이 아닌 것이다.

한 달간의 휴장기간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심어놓은 오이, 가지, 토마토, 옥수수, 상추 등 채소들의 판로가 막히니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이 생겼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무작정 줄 수 없는 노릇이었다.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기도 했지만, 물건을 주고받는 관계에서 어떤 때는 갑이 되고, 어떤 때는 을이 되는 것 같아 물건을 나누는 게 쉽지 않다. 새삼 허물 없이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생각했다.

싱싱푸드 로컬장터

오늘도 유치원생들이 선생님을 따라 시장 구경을 나왔다. 매주 나오는 걸 보면 아마도 교육프로그램 중 하나로 보인다. 선생님의 질문에 따라 아이들은 자기가 아는 채소, 과일의 이름을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큰 소리로 답하며 까르르 웃는다. 도시 한복판에서 느꼈던 농촌의 풍경, 아이들은 커서도 이날의 분위기를 기억할 것이다.

싱싱장터 상인들은 대부분 장사에는 미숙한 사람들이다. 양심껏 정직하게 농사를 짓되, 돈벌이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인다. 서로 먹을 것을 나누고, 그 위에 서로 덕담을 얹는다. 나는 이런 분위기가 좋아서 매주 장터에 나온다.

내년에는 초보 딱지를 떼고, 장터에 가져올 물건들이 더 다채로워질 것이다. 이와 함께 고객들이 만족할만한 경작 노하우나 품질관리도 더 발전하길 기대해본다. 무엇보다도 농민들에게 천덕꾸러기 취급받는 풀이 몸에 좋은 봄나물로 탈바꿈되는 날이 오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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