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일기] 논농사와 사라지는 생물들

지독했던 보릿고개를 넘지 않아도 된 것은 1970년대 중반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집도 봄이 되면 동네 방앗간이나 이웃집에서 쌀을 꾸어 와서 추수 때까지 견디곤 했다. 통일벼가 나오면서부터 농촌에서는 식량자급이 이루어졌다. 또한 추곡수매로 목돈도 만질 수 있었으니, 살 맛 나는 세상이 펼쳐지게 된 것이다.

4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나라는 쌀 걱정 없이 살고는 있지만 논의 생태환경 측면을 살펴보면 안타까운 점이 많다. 나는 15년 이상 벼농사를 짓는 과정에서 나름대로 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써 왔다. 하지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현실의 큰 벽을 느낀다.

격주로 농사에 관한 이야기를 쓰면서 이번엔 어떤 이야기를 할까 생각하다 흔히 볼 수 있었으나 어느덧 사라지고 있는 생물들을 떠올렸다. 우리의 논에서 어떤 생물들이 사라지고 있을까?

붕어, 피라미

모내기를 하려고 물을 대면 이들은 이따금씩 헤엄을 치고 다녔다. 물의 수평을 잡기 위해서 쇠스랑으로 바닥 고르기 작업을 하노라면 발밑에 붕어가 밟히기도 했다. 메기, 참게들이 일찌감치 떠나버린 진흙 속에서 붕어, 피라미들을 잡아서 매운탕을 끓여 먹기도 했다. 간혹 모내기 후에 제초제를 먹은 물고기가 허연 배를 드러내놓고 죽어 있는 안타까운 장면도 보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그 모습조차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미꾸라지, 물방개, 땅강아지

시골에서 미꾸라지는 어디서든지 쉽게 잡을 수 있었다. 어렸을 적, 겨울방학이 되면 동생과 함께 삽과 양동이를 들고 논으로 나갔다. 웅덩이 물을 퍼내서 잡기도 하고, 수로나 그 부근을 삽으로 파면 검고도 누런 미꾸라지가 막 꿈틀거렸다. 우물이 없어서 빨래하기도 힘들었던 어머니는 진흙이 잔뜩 묻은 옷에 화를 내기도 하셨지만, 추어탕은 겨울철 일등 보양식이었다. 흔하던 물방개, 땅강아지도 볼 수 없게 된 것은 마찬가지다.

올챙이

이른 봄 웅덩이나 물이 있는 논바닥 여기저기에는 개구리 알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알을 낳을 수 있는 물웅덩이가 거의 사라졌다. 용케 산란장소를 발견해서 부화를 해도 올챙이는 얼마 못 가서 농약을 먹거나 물이 말라서 죽어버린다.  시골에서도 개구리울음소리 듣기가 어려워졌다. 논에서 사라진 개구리는 산 밑 도랑가에서나 겨우 살아갈 뿐이다. 토종 개구리가 천연기념물이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우렁이

나는 평소에 우렁이의 끈질긴 생명력에 대해 일종의 경의(?)를 느꼈다. 수없이 반복되는 제초제의 살포와 백로의 집중공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유일하게 논을 지켰다. 해마다 우렁이를 보아도 한 마리도 잡아서 먹지를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귀하게 여겼던 우렁이가 올해엔 한 마리도 보지 못해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작년만 해도 수십 마리는 본 것 같은데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우렁이를 마지막으로 올해의 논에서는 어떤 살아있는 생물도 발견하지 못했다. 심지어 거머리나 지렁이마저도 보지 못했으니…

황량한 논길을 걸으며 도대체 사람이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생각했다. 그나마 메뚜기가 유일하게 남아서 마음의 시름을 덜어주었는데, 내년에는 어찌 될지 아득하기만 하다. 나는 조금이나마 메뚜기가 살 수 있는 환경이 될까 하여 논두렁에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다.  아버지도 이른 아침에 낫으로 풀을 깎곤 하셨다. 아마도 부전자전? 어느 날은 논두렁에서 알이 있는 새 둥지를 발견했다. 둥지 옆의 풀을 깎지 않고 그냥 두었더니 며칠 후에 둥지가 없어져서 속상했던 기억이 있다.

밭농사는 제초제 없이 할 수 있지만 벼농사는 쉽지 않다. 언젠가 제초제 없는 농사를 시도해 보았다가 몸이 고생이 많았다. 모내기 며칠 후부터 풀은 자라기 시작하는데, 어린 벼가 아직 뿌리를 내리지 않은 틈을 타서 풀은 왕성한 생명력으로 땅을 점령한다. 그 풀들을 손으로 처리했으니 손가락은 굳고, 허리가 너무 아파서 포기하고 말았다.

어느 날은 논에 갔는데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벼 사이로 무언가가 올라왔다가 내려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고라니였다. 고라니 한 마리가 풀을 뜯어 먹고 있었다. 일꾼을 얻었나 해서 어찌나 고마웠던지, 고라니 농법도 쓸만하다 싶었다. 그러나 고라니가 예쁜 짓만 하는 게 아니다. 벼가 자라면 꺾어서 깔아뭉개어 쉬는 장소로 이용한다. 한 군데도 아니고 여러 군데를 만들어 놓기 때문에 많은 피해를 입힌다.

논에 사는 생물들이 사라진 이유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농수로관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현대식 관개시설의 문제다. 과거 자연 수로에서는 물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퇴적층과 웅덩이가 생겼다. 그곳은 각종 물고기들이 살고 올챙이들이 태어나는 장소였다. 하지만 지금의 수로관에는 흙과 물이 있지 않다 보니 생물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되었다. 그러면 대책은 무엇인가?

첫째, 농수로를 친환경적으로 바꾸는 일이다. 바닥을 콘크리트로 만들다 보니 수로 주변 논으로 물이 스며들지 않아서 땅이 메마르게 되고, 물고기들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된다. 옛날처럼 도랑치고 미꾸라지 잡던 시절은 꿈도 꿀 수 없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잠자리 유충도 살 곳이 없어져가고 있다.

둘째, 둠벙(웅덩이)을 만드는 일이다. 둠벙은 생태연못으로써 갈수기에 물을 공급해주며 다양한 생물들이 살아가는 터전이다. 어렸을 적, 이곳에서 낚시도 했고, 가끔씩 물을 빼면 붕어, 메기, 장어, 참게, 민물새우, 미꾸라지, 우렁이, 조개 등을 잡아서 동네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따라서 정부에서 ‘둠벙 만들기’ 사업을 추진한다면 농사에도 이롭고 생태계도 복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둠벙
경남 고성군 거류면 용운마을의 둠벙. (출처:농촌진흥청)

농촌은 고령화 현상이 심각하다. 고령화 인구가 40%를 넘었다. 농업 기계화로 인하여 1960년대에 비해 노동력 투입은 10% 정도로 줄어서 옛날에 비해 농사짓기는 훨씬 수월해졌다. 반면에 자연환경과 생태계는 파괴되어 사라지고 있다. 머지않아 개구리울음소리마저도 끊어지고 침묵의 들판이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다시금 흙을 생각한다. 흙에 대한 고마움보다도 땅값에 대한 관심이 높고, 인간의 편리함을 추구하다가 소중한 자연과 추억을 상실해가는 작금의 현실이 아쉽다. 아무쪼록 농수로와 둠벙이 농촌 생태계의 중요한 축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최도현

직장인 겸 농부.
풀들과의 대화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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