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그리고 카풀

달

새벽 5시 54분, 나는 추위를 달래며 밖으로 나가 여사님을 기다린다. 이렇게 새벽을 맞이하는 것이 어느새 1년이 다 되어간다. 남들이 보면 무슨 나쁜 짓이나 하는 양 우리는 차에 몸을 싣고 회사로 달려 나간다.

여사님은 오면 꼭 하는 이야기가 있다. “민석씨, 저 달 좀 봐요. 참 밝아요.” 그러면 나는 달을 보는 둥 마는 둥 차문을 열고 추운 몸을 차에 싣는다. 처음 카풀을 할 때만해도 남여 단둘이 새벽에 만나는 것이 어색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레 친분을 쌓다보니 꼭 누님을 태우고 다니는 기분이다.

나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손해를 보는 일도 많았다. 처음부터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속절없이 내 이야기를 하고, 여사님은 누님처럼 세상살이에 이것저것 알려준다. 역시 연륜은 속일 수 없는가보다. 언제나 나는 묻는 쪽, 그녀는 대답하는 쪽이다. 내가 상담역은 제대로 만났다.

처음에는 다른 꿍꿍이를 나에게 말해주던 이들도 많았지만 어느새 그것은 잊어버린 지 오래고, 우리는 오누이처럼 마냥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나눈다. “여사님, 이런 일은 어떻게 풀어가요?” 그러면 “그건 이렇게 저렇게 하면 좋아요.” 이러한 대화를 나눈 것이 벌써 1년하고 6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오늘도 새벽 5시 35분, 어김없이 카풀장소에 도착해서 담배를 입에 물고 차 밖으로 나온다. 어떤 남자가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산책을 하는지 귀에 이어폰을 꽂고 영어를 중얼거리며 걸어온다. 그리고 나를 보고 늘 하듯이 기침을 두어 번 한다. 나는 등을 돌려 담배연기를 깊이 빨아들인다. 그 남자는 내 뒤로 걸어서 왼쪽 인도로 사라진다.

나는 다시 차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잠시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 또 나와 새 담배를 입에 문다. 조그마한 전기차가 왼쪽 도로에서 나와 내 앞으로 지나간다. 그리고 다른 남자가 다리 종아리를 보이면서 추위도 안 느끼는지 자전거를 몰고 건널목을 지나간다.

나는 다시 차안으로 들어간다. 시계는 5시 50분을 향하고 이제 기다림은 끝나간다. 이윽고 5시 51분이 되었다. 나는 장갑, 귀마개, 모자를 벗고 다시 나와 담배를 입에 문다. 그리고 저쪽 아파트 입구를 응시한다.

한 사람이 나온다. 그는 오른편 편의점 쪽으로 사라진다. 곧이어 단발머리를 한 여인이 가방을 들고 나오면서 뛰기 시작한다. 그녀다. 나는 쓴웃음을 지어본다. 그녀는 달리듯이 걸어온다. 곧이어 건널목에서 서로 마주본다.

“안녕하세요?”
“날씨가 추운데 왜 나와 계세요.”
“아니요, 그렇게 춥진 않아요.”
“달이 참 밝아요.”

그녀는 또 달이 밝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참 달이 밝다. 별들도 밝다. 언제나 환히 웃으면서 우리는 함께 차를 타고 회사로 향한다. 저 달이 밝은 한 언제나 그렇게.

김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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