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을 주운 날

만원 오천원 천원 백원

사람들은 행운을 바란다. 물론 나도 행운을 바란다. 그러나 이러한 행운은 선 듯 우리에게 손을 내밀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행운은 고사하고  아주 작은 행운도 잘 찾아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오늘 돈을 주웠다.

자주는 아니지만 나는 산책하는 중에 길바닥에 떨어진 돈을 간간히 줍기도 한다. 그럴 땐 꼭 돈이 길바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다.

예전에 고물장사를 한 두어 달 한 적이 있다. 고물상에 주민등록증을 맡기면 고물리어카를 한 대 준다. 그러면 하루 종일 고물리어카를 끌고 거리를 배회한다. 보통 땐 그렇게 많이 보이던 폐·휴지, 깡통, 병들이 내가 고물리어카를 끌고 나가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같이 고물을 줍는 분 가운데 나갈 때마다 고물리어카에 물건을 가득 싣고 오는 사람분이 있었는데, 나는 그가 너무 부러워 물어 보곤 하였다. “어디를 갔는데 그렇게 고물이 많아요?” 그러면 그분은 웃으며 나에게 말해주곤 한다. “물건은 항상 주인이 있어요.”라고.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지만 오랫동안 고물을 주워왔던 그분이 하는 말이니 명언중의 명언으로 들렸다. 길에 떨어져 있어도 고물은 항상 주인이 따로 있다는 말. 그 말은 잃어버린 것도 따지고 보면 그 물건이 이제 그 사람의 소유가 아니라는 말과 상통된다. 그렇게 주인이 달라지는 그 물건은 주운사람에게 작은 행복을 안겨준다.

오늘 거리에서 만원을 주웠다. 길을 걷고 있는데 도로에 돈 만원이 떨어져 있는 것이다. 길 위에 반듯이 누워 있었는데, 이럴 때 나는 일단 줍고 본다. 물론 처음엔 경찰서에 갖다 준적도 있었다. 그러나 큰돈이 아니면 거의 주인을 찾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는 그냥 내가 갖는다. 이러한 경우 법의 저촉을 받기도 하지만 소액일 경우 그렇게 문제가 되는 것 같지는 않다.

돈을 주울 땐 꼭 돈이 나에게 ‘주인이여, 나를 보소서’하고 소리치는 것 같다. 그렇게 길거리에서 주운 조그마한 행운에 나는 언젠가는 큰 행운이 오겠지 하는 기대감을 가져보기도 한다. 그러면 잠시나마 부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흐뭇해진다.

내가 그렇게 주운 돈은 언제나 어머니의 몫이 된다. 나의 어머니는 돈을 잃어버린 적은 있어도 주워 본적이 한 번도 없는 분이다. 내가 돈을 주웠다고 어머니께 드리면 왜 이렇게 잘 주워 오냐고 묻곤 한다. 아마 주변에서 나만큼 잘 주워 오는 이는 없는 것 같다.

예전 고물장수시절 그분의 말이 생각난다. ‘돈이든 물건이든 그것은 항상 주인이 있다’는 말. 그렇다 행운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항상 행운의 주인은 따로 정해져 있는 것 같다. 수많은 사람들이 크고 작은 행운 속에서 웃지만 행운이란 항상 자신의 주인을 찾아다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오늘 돈을 주웠다. 큰돈은 아니지만 나에게도 그러한 행운이 있다는 사실이 그 돈의 가치보다도 나를 행복하게 한다. 내일도 어김없이 해는 동쪽에서 떠오르리라. 그러면 나는 또 길거리로 나가겠지. 그리고 어쩌면 또 줍겠지. 조그마한 행운을. 그 고물장수가 말했듯이 한 번의 조그마한 행운을, 내가 그 행운의 주인이기를 조용히 빌어본다.

김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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