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충원의 야생동물

현충원
국립 현충원

나는 한때 현충원에서 경비로 5년간 생활한 적이 있었다. 물론 현충원은 대전에 있는 국립묘지를 말하는 것이다. 당시 공장에서 화물지게차를 운전하고 있었는데 화물지게차일이 힘에 부쳐서 전직한 것이 현충원의 경비 일이다.

현충원에 근무하면서 많은 일을 경험하였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현충원에서 같이 생활한 야생동물이다. 처음에는 청설모가 잣을 물고 이리저리 뛰는 모습과 아침이면 크낙새가 우는 정도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귀엽거나 두려운 동물을 무수히 많이 접하였다. 혹자는 묘지에서 근무했으니 귀신에 대한 경험이라도 있는가 하고 기대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귀신이야기보다는 내가 무수히 많이 접했던 야생동물 이야기를 할까한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나는 순찰 때문에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잣을 물고 가는 청설모와 외진 산길에서 마주쳤다. 그 청설모는 가던 길을 멈추고 오토바이 아래에서 잣 열매와 나를 번갈아 보면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 없었다. 나는 그저 신기해서 그 청설모를 한참 바라보았는데 그 청설모의 갈등하는 눈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어느 겨울, 이월 초순쯤으로 기억한다. 새벽 네 시경이면 정문근무를 마치는데 정문 옆에 무엇인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살금살금 다가갔다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는 수노루와 마주쳤다. 어찌나 놀랐던지 심장이 멎을 뻔했다. 위풍당당한 뿔을 가진 수노루의 위용은 정말 대단했다. 역시 수노루는 수노루인 것이다.

그리고 새벽녘이면 현충원 다리를 따라 움직이는 너구리를 볼 수 있는데 그 귀여운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는 그때 너구리를 처음 보았다. 그밖에 현충탑 광장에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어린사슴들이 간혹 나타나서 현충원 방문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이러한 동물 외에도 수많은 귀여운 야생동물들이 현충원에서 무리를 지어 지낸다.

그러나 밤이 깊어지면 귀여운 야생동물보다는 무시무시한 야생동물들과의 조우가 나를 두렵게 하였다. 어두운 밤의 노루소리는 거리를 측량할 수 없어 나를 두렵게 하였고, 불시에 마주하는 야생 멧돼지나 어둠 속에서 책상위에 앉아 나를 보던 뱀과의 조우도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어느 초가을 하수구 구멍 밖으로 나와 있는 하얀 것을 보고 새로운 민달팽인가 하고 손으로 잡으려다가 이상해서 빗자루로 밀어보니 머리에 뿔이 솟은 하얀 살모사가 기어 나왔다. 어찌나 놀랐던지 그 후로는 뱀이 있나 없나 발밑만 보고 다녔다. 하수구에는 5일간 백반을 듬뿍 뿌렸다.

야생동물들과의 조우 중 가장 무서웠던 것은 단연 살쾡이였다. 그날 새벽 두시쯤 하늘엔 달이 환하게 밝고 별들이 총총히 박혀 있어 나는 왠지 기분이 좋았다. 담배를 입에 물고 기분 좋게 밤하늘을 감상하고 있는데 어둠속에서 나를 향하여 똑바로 걸어오는 짐승이 있었다. 그 짐승은 바로 앞에 딱 서서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입에 담배를 문채 꼼짝도 못하고 담배에서 피어나는 연기만 보고 있었다. 담배는 생으로 타 들어가는데 몸은 움직여지지 않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담배연기만 보고 있자니 그 짐승은 연기처럼 조용히 사라졌다.

나는 지금까지 그 짐승이 호랑이 아니면 나의 착각일 것이라 여기고 있었는데 최근에서야 그 짐승이 호랑이가 아닌 살쾡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놈은 그렇게 갑자기 나타나서 나를 공포에 몰아넣고는 다시 자기가 나타났던 어둠속으로 돌아갔지만 나는 거의 육 개월을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오늘 현충원 앞을 지나게 되었다. 잠시 서서 바라보니 현충원은 즐거웠던 기억과 두려웠던 기억이 엉키면서 그리움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지금도 현충원은 호국영령들과 온갖 야생동물의 휴식 공간이 되어주고 있을 것이다. 오늘밤도 수노루와 너구리는 어느 곳에서 살쾡이와 함께 이 추운 겨울밤을 호국영령들과 지새우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현충원의 밤을 홀로 지새우고 싶다.

김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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