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끝의 천국

십자가

그해 겨울 나는 아침새벽에 우유배달은 하고 있었다. 우유배달은 그해 9월말에 시작하였는데 용돈이나 벌어 보겠다고 시작한 일이었다.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서 월급 외에 용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곤 새벽시간을 이용하는 신문과 우유배달뿐이어서 둘 중 우유배달을 택한 것이었다. 오토바이 구매하고 9월말 가을이 시작되면서부터 우유배달을 시작하였다. 오토바이는 처음이라 운동장에서 연습을 많이 했다.

새벽 네 시에 나와 우유대리점에서 우유 네 박스를 싣고 배달해야했는데 우유 네 통을 싣기 위하여 오토바이 뒷좌석을 철물공장에서 큰 사각형 앵글로 받치도록 작업을 하였다. 이것은 주위사람에게서 주워들은 정보로 하였는데 오토바이비용 앵글작업에 거기다 오토바이 받침대까지 오토바이를 개조하는데 돈이 적잖게 들었다. 물론 아내의 반대는 심했다.

새벽 네 시에 오토바이를 달리면 온몸이 다 시원할 정도로 속이 확 풀렸다. 가을 새벽은 너무나 시원하였다. 우유 네 통을 나르는 시간은 대략 2시간정도 걸렸는데 가을새벽의 시원함과 새벽우유의 신선함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을 정도여서 우유배달은 나에게 잘 맞았다. 가끔 비가 내리면 새벽의 어둠의 서늘함과 함께 텅 빈 골목길의 음침함에 주눅이 들기도 하였지만 그래도 가을 날씨를 마음껏 만끽할 수 있었기에 나는 우유배달 일이 좋았다.

배달 끝나면 남은 우유 한 개정도 살짝 먹는 재미도 있다. 배달 끝에 먹는 우유 맛은 지금도 잊지 못할 정도로 나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흡사 부처님이 드시는 달기수와 같을 정도랄까. 근데 겨울이 오면서 이러한 낭만도 여지없이 깨어져 나갔다.

눈 쌓인 새벽, 얼어붙은 길 그리고 새벽에 내리는 얼음서리. 어느 날부터인가 우유배달은 나의 생각과 달리 고달픔으로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겨울 어느 날 새벽, 대리점에 들어가는데 나와 같이 배달 일을 하는 이 씨가 오토바이를 끌고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왜 벌써 들어 오냐고 물어보니 빙판길에서 새벽기도 가는 할머니를 오토바이로 치였다는 것이었다. 그리 크지 않은 사고였으나 합의금으로 백만 원을 줘야하는데 돈도 부담이지만 이제 겨울이 오니 힘들어서 그만 두겠다는 것이었다.

겨울이 오면 무슨 일이든지 어렵기는 마찬가지지만 오토바이로 배달하는 일은 사고로 이어지기 쉬워 그냥 포기하는 것이 이 업계 실정이었다.

그날도 눈비가 새벽부터 내렸다. 우유 네 통을 실고 나니 앞으로 배달할일이 깜깜하였다. 옷은 두툼하게 입어 추위는 덜하지만 빙판길을 달릴 것을 생각하니 눈앞이 어수선하였다. 시동을 걸고 천천히 오토바이를 몰고 위험한 곡예라도 하듯이 골목길을 빠져나가는데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들어가고 있었다.

몰래 우유를 먹는 것은 지치지 않았지만 깊어지는 겨울만큼 나는 이 일에 지쳐있었다. 그렇게 골목길을 막 빠져나오는데, 그 순간 내 눈앞에 보이는 성당의 꼭대기의 불빛. 불빛을 보는 순간 나는 갑자기 지금까지의 근심과 고통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그 골목길 끝자락의 성당꼭대기의 불빛은 나를 평온함으로 감싸주었다. 나는 그 순간만은 온화해졌고 나의 기도는 그렇게 시작 되었다. 온 겨울 내내 이 얼어붙고 짙은 어둠속으로 나를 내모는 기도는 그곳 골목길에서 계속 울려 퍼져 나가고 있었다.

김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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