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볶는 향기

커피와 카페

예전에 나는 자판기에서 300원 넣고 뽑아 먹는 밀크커피가 제일 맛있었다. 담배한대에 커피 한잔은 나에겐 일상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입맛도 변해 요즘은 원두커피도 마시고 있다. 인테리어가 고급스러운 카페들이 골목골목 생겨나면서 바뀌게 된 취향이다.

그렇다고 밀크커피를 먹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판기 커피대신 봉지커피를 즐긴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지금은 그렇게 마시지 않지만 한때 봉지커피를 18잔은 마셔야 하루가 지나는 경우가 허다했다. 지금도 새벽예배가 되면 봉지커피를 종이컵에 한잔타서 예배 중에 입의 갈증을 식히는 일을 마다하지 않은 이유는 봉지커피의 달콤함에서 옛날 다방아가씨들이 타주는 달달한 커피 맛을 떠올리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내가 무심결에 고급카페에 들어가는 일이 간혹 있다. 카페에 들어서면 고소하게 볶는 커피 향과 제목은 모르지만 공간을 부유하는 아름다운 노래와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때문에 코와 귀와 눈이 호강을 한다.

이런 카페에 들어가면 꼭 시키는 것이 있다. 처음 아무것도 모를 때는 에스프레소를 주문해서 그 원두진액의 쓴맛을 무슨 자랑이라도 되는 양 마셨는데, 지금 생각하면 촌놈이 서울 상경기를 썼던 격이라 쓴웃음만 나온다.

카페에 들어가 핸드폰도 들여다보고 흘러나오는 음악에 심취되어 감상하다가 나도 모르게 창밖으로 눈을 돌리면 저녁 도로위에서 차들이 바쁜 야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래 전 아내가 곁에 있을 때 언제나 한잔을 시켜서 나누어 먹던 생각이 난다. 알뜰한 아내의 생각이었는데 그때는 경제적으로 알짜배기의 커피 즐김이었다면, 지금은 나 혼자만의 시간을 달래고 나만의 즐거움으로 나아가고 있다.

카페에 들어서면 언제나 “차가운 아메리카노 유리컵으로 주세요!”라고 주문을 한다. 그리고 번호패를 하나 건네받아 언제나 밤의 도로뿐만 아니라 인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창가의 자리로 가서 앉는다. 창가 자리를 고집하는 것은 내 마음속의 누군가를 기다리는 애처로운 몸짓이리라.

번호패가 울리고 유리잔의 차가움을 손으로 느끼면서 아메리카노를 들고 자리에 돌아와서 몇 년 전에 아내와 즐겼던 경제적인 알짜배기 느낌은 접어두고 눈을 자연스레 창밖으로 돌려놓고 음악 속에서 저녁의 야경을 느껴본다.

이런 날, 비라도 오면 아니 눈이 오면 그것도 함박눈이 오면 나는 그 광경에 취하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커피와 음악과 눈이 자아내는 분위기에 빠져든다.

이렇게 언젠가부터 카페마니아가 되어버린 나는, 이런 모습이 그 옛날 부정하고 싶은 화이트칼라나 부르주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얼핏 머리를 스치면서, ‘사람의 생각도 때가 되면 세월 속에서 변하는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나를 또 다른 허전함으로 내몰아간다.

내가 즐겨 찾는 카페 중에서 ‘하라카페’라는 곳이 있다. 독신주의를 주장하는 털털한 아가씨가 운영하는 카페인데 언제부턴가 말동무가 되어 드나들고 있다. 물론 커피는 차가운 아메리카노이고 유리컵이다. 그곳은 다른 카페보다 규모는 작지만 어린 아가씨가 운영하다보니 색다른 대화의 맛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방문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속절없이 풀다보니 꼭 주인과 손님이 아닌 시공과 세대를 뛰어넘은 막역한 지기 같은 분위기가 그녀와 나 사이에 다리처럼 놓여 있다.

나는 술을 한잔도 못 마시는데 그녀는 술고래다. 그러나 그녀의 털털한 성격은 카페를 탐방이나 하듯이 다니는 나에게 편안함으로 다가와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카페의 이러한 분위기가 내 마음에서 하나의 커피 향을 볶는 곳으로 은은히 다가오는 것은 나의 외로움을 달래는 과정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오늘 저녁, 식사를 마치고 옷을 껴입고 밖으로 나간다. 이제 밖은 겨울의 냄새는 점점 봄 냄새에 밀려가고, 거리는 시원한 맛으로 온몸에 느껴져 온다. 그리고 커피 볶는 냄새가 나는 카페로 걸음을 옮긴다. 또다시 말동무와 창가에 앉아 보는 바쁜 창밖사람들과 그리고 차량의 불빛을 구경하러 간다. 이 밤, 오늘 봄비가 내린다. 내 마음의 커피 볶는 향기가 짙어진다.

김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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