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자 작가 포토에세이〈11〉 지금 행복하신가요?

벽
벽 ⓒ김인자

지금 행복하신가요?

예, 행복해요.

아니오, 저는 행복하지 않아요.

행복하냐구요?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저는 지금 행복하고 싶어요. 그래서 행복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행복에 대해 말한 책도 찾아 읽어보고 행복하다고 말한 사람도 만나보고 맛있는 것도 먹어보고요.

행복은 결핍이 충족될 때 찾아옵니다. 물론 그것이 반드시 완전한 충족일 필요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결핍과 욕망과 사랑이 어찌 완전히 채워질 수 있겠는지요. 나의 갈구가 조금씩 채워지는 느리고 충만한 과정에서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낍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행복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결핍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대체될 수 있습니다. 행복에 대한 질문은 사랑, 곧 결핍에 대한 질문입니다.

-김수영의 행복어사전 ‘필로스’ 중에서

오늘은 즐거운 학교 아침조회가 있는 날이에요.
신나요 학교 아이들이 강당에 모여 새로 오신 교장선생님 훈화를 듣고 있어요. 전에 계신 교장선생님은 명예퇴직을 하시고 캐나다로 이민을 가셨거든요.

1학년 세율이부터 6학년 건우까지 신나요 학교 전교생 아이들은 새로 전근 오신 교장선생님 말씀을 열심히 듣고 있어요. 단 한 명 1학년 선호만 빼고 말이지요. 선호는 교장선생님 훈화가 하나도 재미가 없어요.

대신 선호는 옆줄에 앉아 있는 2학년 예림이 누나 옷이 재밌어요. 신나요 학교 패셔니스타인 예림이는 오늘 학교에 검정색 땡땡이 원피스를 입고 왔어요. 피부가 눈처럼 하얀 예림이랑 검정 땡땡이원피스는 참 잘 어울려요. 선호 눈에는 검정 땡땡이 무늬가 쪼꼬만 똥처럼 보였어요. 똥글똥글 까만 토끼똥 말이에요.

“아파아~ 꼬집지마아”
예림이가 선호 손을 매정하게 탁 치며 말했어요. 금새 선호 손등에 빨갛게 예림이 손자국이 찍혔어요.
“꼬집은 거 아닌데”
선호는 히죽히죽 웃으며 다시 또 예림이 옷을 잡아당기려고 손을 뻗었지요. 그런 선호의 손을 좋아요 교감선생님이 꼭 끌어 당겨 잡았어요.

선호는 예림이 누나가 좋아요. 키도 크고 몸집도 크고 무엇보다 예림이 누나는 힘이 엄청 세거든요.

요즘 방과 후 교실에서 2학년 형과 누나들이 부채춤을 배워요. 선호는 복도 창문에 붙어 서서 방과 후 교실 안을 들여다봤어요. 2학년 형과 누나들이 부채를 못 펴서 쩔쩔매고 있네요.

그런데 예림이 누나는 역시 달라요. 호야형도 지연이 누나도 한 번에 쫙 펴지 못하는 부채를 예림이 누나는 한 방에 부채를 쫙 폈어요. 그것도 한 손으로 힘 하나 안들이고 한 번에 쫙.

그날부터 선호는 예림이 뒤만 졸졸 따라다녔어요. 선호와 같은 반 친구들이 “껌딱지이~ 껌딱지이~ 선호는 예림이 누나 껌딱지”하고 놀려도 선호는 아랑곳하지 않고 예림이 뒤만 졸졸 따라 다녔어요.

월요일 아침 전교생 조회를 할 때도 1학년인 선호는 2학년인 예림이반 줄에 가서 예림이 옆에 가서 앉았어요. 2학년 담임선생님이 “선호야, 1학년 자리에 가서 앉아야지”하고 아무리 말해도 선호는 못들은 척 예림이 옆에 가서 앉았어요.

2학년 반에 앉아서 선호는 예림이를 쳐다보며 혼자 웃고 손을 뻗어 예림이를 잡으려고 했어요. 그런 선호를 보고 예림이는 저만치 물러나 앉으며 질색팔색을 했구요.

오늘도 선호가 손을 뻗어 예림이 옷을 잡으려고 하자 새침떼기 예림이는 “만지지마!” 하고 소리를 빽 지르며 수연이 옆으로 바짝 다가앉았어요.

좋아요 교감선생님은 자리에 앉아서도 선호와 예림이에게만 시선이 갔어요. 좋아요 교감선생님이 쳐다보든지 말든지 선호는 예림이를 잡으려다 예림이가 질색을 하며 수연이 옆으로 가서 앉자 선호는 “아~아아아”하며 이름 모를 소리를 지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뛰어 나갔어요.

훈화를 하시던 새로 오신 교장선생님이 깜짝 놀라 좋아요 교감선생님을 쳐다보셨어요. 좋아요 교감선생님이 난감한 웃음을 지으며 선호 뒤를 따라 뛰어나가셨어요.

좋아요 교감선생님은 운동장을 쓰윽 한 번 둘러보았어요. 선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어요. 좋아요 교감선생님은 발걸음을 돌려 급식실이 있는 신관으로 총총총 뛰어갔어요.

선호는 교실에서도 의자와 교과서가 필요 없어요.
선호는 학교에 오면 잠시도 자리에 앉아있지 않아요.
선호는 수업시간에도 교실 안을 초원처럼 뛰어다녀요.

“선호야, 교실에서 그렇게 뛰어다니면 안돼” 선호는 담임선생님이 주의를 주면, 선호는 “아~~~~~~” 하고 큰소리로 괴성을 지르며 밖으로 뛰어나가요.

선호가 학교에서 조용하면 뭔가 이상해요.
선호는 아이들이 싫어하는 행동만 골라서 해요.
같은 반 선이는 자기 물건 만지는걸 아주 싫어하는데 선호는 선이가 팔팔 뛰며 싫어하는데도 유독 선이의 학용품을 함부로 만져요.

선호는 수연이 머리만지는 걸 좋아해요. 단정한 수연이는 아침마다 엄마가 예쁘게 머리를 땋아주시는데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예쁘게 닿은 수연이 디스코머리를 선호는 자꾸 만져서 헝클어뜨려요.

착한 수연이는 선호에게 “하지마!” 라는 말을 못하고 울고요. 우는 수연이를 보고 선호는 그게 또 재밌어서 자꾸자꾸 수연이 머리를 만지작거려요.

깔끔한 희정이는 누가 자기 옷을 만지는 걸 싫어하는데 선호는 희정이 옷을 뒤에서 잡아당겨요. 희정이가 “하지마!”하고 말해도 말할 때뿐이에요.
선호에게는 수업시간과 쉬는 시간의 경계가 없어요.

좋아요 교감선생님 머리에 입력되어 있는 선호에 대한 정보예요. 선호담임선생님에게 들은 정보지요.

교감선생님이 급식실 들어가는 복도에 서서 바라다보니 선호는 급식실 들어가는 문 옆에 서 있었어요.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선호는 벽에 귀를 대고 있었어요. 좋아요 교감선생님을 발견한 선호는 얼굴에서 웃음을 싹 걷더니 고개를 돌려 반대편 귀를 벽에 바짝 들이댔어요.

정신병원에 새로운 의사가 왔다. 의사는 병원에 있는 환자들을 살펴보았는데 다들 병자처럼 보였다. 오직 한 환자만 빼고. 그 환자는 그저 벽에 귀를 대고 가만히 있는 것 외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어 보였다.

환자가 있던 방은 병원 건물의 끝이라서 벽 뒤에는 아무 것도 없었으므로 무슨 특별하게 들릴 소리가 없었다. 환자는 밥 먹고 잠자는 시간을 빼면 항상 벽에 귀를 대고 있었다.

처음엔 미쳐도 참 곱게 미쳤다고 웃어 넘겼지만 귀를 대고 듣는 그의 자세가 너무 진지하고 심지어 엄숙하기까지 해서 의사는 점점 궁금해졌다. 혹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은 아닐까? 저 벽에서 무슨 희망의 소리가, 구원의 소리가 들리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자 확인해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의사는 그의 옆에 나란히 앉아 벽에 귀를 대고 들어보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조금 더 귀를 벽에 바싹 갖다 대고 들어보았다. 역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의사는 공연히 바보 같은 짓을 한 것 같아 환자에게 화를 냈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뭘 듣고 있어요! 의사의 말을 들은 그는 도리어 더 화를 냈다. 안 들리는 게 당연하지. 내가 지금 십 년째 기다려도 아무 소리도 못 들었는데 당신이 그렇게 잠깐 듣고 무슨 소리가 들리면 그게 정상이겠어?

“선호야, 이벽에서는 어떤 소리가 들려?”
좋아요 교감선생님이 선호 등에 손을 대고 물었어요.

선호는 아무 대답 없이 고개를 돌려 이번엔 반대쪽 귀를 벽에 더 가까이 댔어요. 그런 선호를 잠시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던 좋아요 교감선생님은 선호 옆에 나란히 서서 아무 말 없이 벽에다 귀를 바짝 들이댔어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사람이 있나요?

김인자

책 읽어 주는 그림책 작가.
읽고 쓰는 나의 활동이 세상 사람들에게 쪼꼼이라도 보탬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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