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이염에서 배운 것

잘 듣는 사람

아주 어렸을 때 중이염을 앓았다. 오른쪽 귀에서는 항상 고름이 흘러나왔다. 고름이 속에서 굳으면 뛰어갈 때마다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났다. 중학생 때는 더 심해져서 자고 나면 흘러나온 고름으로 베개를 흠뻑 적셨다. 이때 중이염을 제대로 치료하지 않아서 고막은 손상되고 청력을 거의 상실하였다.

이 병으로 인해 마음은 어둡고 절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신체검사 결과표에 적힌 ‘난청’이란 단어는 어린 나이에 적잖은 아픔이었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책을 좋아했던 고등학교 시절, 나는 일기장에 ‘영혼의 고름’이라고 써놓고 귀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고름과 인간이 범하는 죄의 성질을 생각했다.

죽음의 그림자가 내 마음을 지배했고 어둠은 계속해서 짓눌렀다. 그래서인지 학교 공부보다는 책 읽기에만 몰입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1학년 때는 한국문학을, 2학년 때는 세계문학을, 3학년 때는 이해도 못 하는 철학책을 들고 다녔다. 독서는 암울한 세상의 돌파구와 같았기 때문이다.

입대를 위한 신체검사에서 ‘만성 화농성 중이염’ 판정을 받고 방위병 징집대상이 되었다. 현역 불가. 당시 의사는 “당신, 죽고 싶으냐? 염증으로 골 파괴의 흔적도 있어서, 앞으로 더 진행되면 ‘진주종’이 되고 뇌에 염증이 퍼져 죽는다.”라는 충격적인 말을 했었다.

나는 더 염세적인 사람이 되었다.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수술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이러한 문제로 고민하던 중 친구의 전도로 교회에 가게 되었고,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고름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

‘영혼의 고름’은 스스로 마음속에 던지는 화두였다. 고름은 찐득하고 역한 냄새를 냈다. 그리고 미움, 시기, 질투, 교만, 열등감, 허영, 정욕 같은 것들도 추한 냄새를 풍기며 내면을 시끄럽게 하였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의문이 있다.

첫째, 나는 잘 듣는 사람인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던 것 같다. 자기 말만 하거나 상대방의 말을 이해한 듯이 말하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대화에서도 일종의 ‘이명현상’이 나타난다. 자기만 듣는 소리를 상대방에게 내는 것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둘째, 나는 말을 잘하는 사람인가?

부끄럽게도 나는 입 냄새가 많은 사람이다. 말을 많이 할수록 주위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었다. 그런데 자기중심적인 말, 오해하고 하는 말, 세상 욕심에 가득한 말, 남을 욕하는 말들도 입 냄새처럼 남에게 고통을 준다.

지인 가운데 말을 잘 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고 그의 언변이 뛰어난 것은 절대 아니다. 사랑과 용서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그의 말은, 마치 성경에서 나오는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 사과’ 와 같다. 그 소리는 맑고 청아하며 꽃향기가 흘러나오는 듯하다.

그 사람을 보면 거울을 보는 것 같아서 나의 모든 부끄러움이 다 드러난다. 입 냄새를 풍기는 사람이 자기 냄새를 잘 모르듯이 자신의 말이 얼마나 큰 악취를 풍기는지 잘 모르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나이가 들어가니 듣기보다도 말하는 기회가 더 많아진다. 상대방의 마음을 잘 헤아려 듣기보다는 알고 있는 지식을 말해주려다가 대화가 단절되는 경우를 흔히 본다.

공자는 예순의 나이를 ‘이순(耳順)’이라 하였는데, 어떤 말을 들어도 거슬림이 없으려면 먼저 잘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나이 일흔이 되어 마음이 원하는 바를 해도 도에 어그러지지 않는 ‘종심(從心)’의 단계에 도전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지금도 한쪽 귀가 잘 안 들리기에 왼쪽 얼굴을 상대방 쪽으로 돌리게 된다. 이 모습을 이상하게 보는 시선을 느낄 때도 있다. 그리고 같이 걸어갈 때는 의도적으로 그 사람의 오른 편에 선다. 모두가 잘 듣기 위해서다.

이처럼, 상대방의 말을 들으려면 나름대로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대화 속 이명이나,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잠꼬대 현상에 빠질 수도 있다.

어렸을 때부터 지녀 온 중이염이 때론 인생의 슬픔이기도 했지만, 그 의미를 알고부터는 감사의 조건이 되었다. 육신의 병을 대하다가 영혼을 마주하게 되고, 나아가 잘 듣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갈망에 이르기까지.

내 목소리는 내가 알고 있는 그 사람처럼 청아한 노랫소리와 그윽한 향기를 낼 수 있을까. 오늘도 말을 적게 하라는 가르침을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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