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기 좋은 날

노동자

“오늘 날씨 참 좋네!”

날씨가 좋은 날이면 놀러 가기 좋은 날이 아니라, 일하기 좋은 날이라고 생각한 지도 10년 가까이 되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직장을 그만두고, 국립기관의 경비직을 택할 때는 많은 고통을 겪었다.

배운 기술도 없이 사무실에 앉아서 일만 하던 40대 중반의 남자가 갈만한 곳은 거의 없었다. 지금은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정년을 넘어 70세까지 일할 수 있게 되었다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기피하는 일이긴 하다.

주야간 교대근무, 처음 해보는 일들,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들이 마음을 힘들게 했다. 가끔씩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내 처지를 얼버무리기 일쑤였다. 공부를 얼마나 했느냐, 과거에 무슨 일을 했었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방객들에게 길을 안내하고, 시설물에 대한 안내도 최대한 친절하게 해야 했다. 무엇보다도 경제적 약자가 되어서 가정경제를 아내에게 의존하게 된 것이 문제였다.

어느 날, 지인의 경조사에 부조를 할 일이 생겼는데 돈이 부족했다. 아내에게 이야기를 꺼냈더니, “그것까지 나에게 달라고 하느냐?”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 후부터 알바를 찾기 시작했다.

맨 먼저 했던 일은, 1950~1960년대 한자가 많이 섞인 신문을 한글로 디지털화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시간과 노력에 비해 돈이 너무 적었다. 택배 상하차까지 생각해 보았지만 너무 힘든 일이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것이 건설현장 일이었다. 처음에는 한 달에 네다섯 번 정도 일하다가 점차 일수를 늘렸다. 야간 들어오기 전, 야근 후에도 잠도 안 자고 일하니 한 달에 15일씩이나 일했다. 게다가 농사일까지 했으니 몸이 녹초가 되는 날이 많았다.

주위 사람들은 내가 쓰리 잡을 한다고 대단하다고 했다. 그렇게라도 열심히 하는 것은 가장으로서의 일종의 책임감이었다. 그리고 존재의 의미이기도 했다. 어쩌다 사회의 한구석으로 밀려났지만, 현장에서는 나를 필요로 했고, 일을 끝마치는 성취감도 컸기 때문이다.

건설현장은 대개 아침 7시에 시작해서 오후 5시에 끝난다. 그러기 위해서 인력사무소에 5시 40분 정도까지는 가야 한다. 이 업종이 추울 때는 추운 곳에서 일하고, 더울 때는 더운 곳에서 일하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날씨는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다. 비가 오면 공치는 날이요, 날씨에 따라 작업여건이 달라지다 보니 일기예보 체크는 필수적이다.

한겨울은 건설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힘든 계절이다. 우선 일감이 현저히 줄어서 일을 못할 때가 많다. 타지에서 일감 찾아 몰려든 사람들은 방세 내기도 버겁다. 오늘은, 또 내일은 일이 있을까? 항상 걱정하는 것이다. 나는 직장 근무를 하면서 알바로 하기 때문에 그런 걱정은 없었다.

황량한 벌판에서 부는 겨울바람은 매섭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어느 토목현장에 교통신호를 보러 간 적이 있다. 그날은 찬비가 내리더니 이내 세찬 눈보라로 바뀌었다. 벌판에 서서 간간이 오는 덤프트럭을 확인하는데, 뼛속까지 파고드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런 날은 일하기 좋은 날이 아닌 최악의 날이다. 나는 “감사합니다!”를 계속해서 외치며 버텼다. 감사의 마음은 고통을 이길 수 있는 힘이었다.

일이 고되기 때문에 인력사무소에서 10% 이상 떼는 수수료를 속칭 ‘똥을 뗀다.’고 한다. 맨 처음에 누가 이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는지는 잘 모르나, 여기엔 아까운 돈이지만 버림에 대한 철학이 담겨있는 것 같다.

한겨울이라도 항상 추위로 고생하는 것은 아니다.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는 날이면, 같이 일하러 나온 사람끼리 ‘오늘은 참 일하기 좋은 날이네’ 말하면서 맞장구친다. 따뜻한 방에서 쉬고자 하는 유혹을 물리치고 나온 자신이 대견했던가. 안 나왔으면 어찌 될 뻔했느냐고 서로 덕담을 건네며 웃기도 했다.

겨울 추위만큼이나 한여름 더위도 견디기 힘들다. 가마솥의 열기처럼 푹푹 찌는 30℃ 이상의 날씨에도 일할 때가 있다. PT병으로 냉수를 아무리 마셔대도 갈증이 가시지 않는다. 32℃와 33℃의 경계, 분명 1℃ 차이지만 일할 수 있고 없고의 체험적 경계선이 32℃였다.

땡볕 아래에서 40㎏짜리 레미탈을 나르고, 콘크리트 치고, 보도블록을 까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이다. 어느 하루는 아침부터 어지럽고, 매스껍고, 구토증세가 있어서 오전 일만 겨우 마치고 집에 간 적이 있다. 그 후 한 달 동안 미미한 일사병 증상이 계속되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날씨가 좋은 날이 있다. 그늘에서, 산등성에서 부는 산들바람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이런 날이면 ‘오늘은 참 일하기 좋은 날이네’라고 말하곤 한다. 점심을 먹고 나서 종이박스 한 장 깔고 누워 있으면 세상만사 시름을 다 잊는 듯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볼 때는 혐오스러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작업복장을 해제하고 누리는 잠깐의 꿀잠은 오후 작업을 위한 힘을 얻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추위를 겪으면 따뜻한 공간에 감사하고, 더우면 시원함에 감사를 체득하게 된다. 날씨만 보면 일하기 좋은 날은 많지 않다. 여름과 겨울이 길어서다. 그러나 ‘일하기 좋은 날’은 날씨에 상관없이 언제든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할 것이다.

추운 겨울이지만 현장에서는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이 많다. 이분들의 수고가 있기에 좋은 아파트에서 안락을 누리고, 편리한 도로를 이용하여 즐겁게 여행도 다니는 혜택을 누리는 것이다.

나는 10년 가까이 현장 일을 병행하면서 가정경제에 보탬이 되고, 아이들 대학 공부도 마칠 수 있게 되었다. 이 기간 동안 직장과 현장과 집을 열심히 오가며 일한 보람을 느낀다.

요즘 일자리 구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얼마 전 인터넷 기사에서 좋은 대학을 나와도 면접에 20번 모두 떨어졌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런 일이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은 아닐지라도, 오늘날 취업절벽 시대를 사는 청년들은 얼마나 힘이 들까.

우리나라 청년들이 ‘오늘은 일하기 좋은 날’이라고 즐겁게 외치며 신바람 나게 일하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오늘은 일하기 좋은 날’, 얼마나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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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도현

직장인 겸 농부.
풀들과의 대화를 꿈꾸는 평범한 소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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