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미식가와 순대국밥의 만남

인력시장

비가 오는 날처럼 날씨가 궂으면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즐겨먹는 음식이 있다. 바로 순대와 순대국밥이다. 나는 한동안 체력에도 안 맞는 육체노동, 즉 노가다 전선에서 일을 하였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어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가면 더 이상 가지 못하고 집에서 쉬는 시간이 많았다.

하루 일당으로 3~4일 버티다 돈이 다 떨어지면 다시 인력시장으로 나가곤하면서 육 개월을 보내고 있었다. 인력시장에 아침 여섯시까지 도착하면 여섯시 반에서 일곱 시까지 일할 곳을 배정받아 나가는 것이다. 처음에는 겁도 나고 체력적으로 힘도 딸릴까봐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어느 초가을 용기를 내서 한번 나가보니 할 만하여 이삼일 건너 나간 것이 육 개월이 되었다.

지금은 십이만 원정도 하지만 당시에는 오만 원에서 육만 원 받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래도 그 돈이면 삼사일 내 용돈은 되었다. 가서 하는 일이야 고작해서 기술자들 뒷모도를 하는 일이지만 그것도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나는 그동안 육체노동을 전혀 해보지 않았다. 아니 해볼 기회조차도 없었다. 그렇게 부자는 아니지만 좋은 가정에 태어나 대학졸업 때까지 그 흔한 아르바이트 한 번도 안하고 학교를 끝마쳤고, 군에서는 작전과에 복무한지라 육체노동을 할 기회가 전혀 없었다. 이런 내가 육체노동을 그것도 서른 살이 넘어서 한다는 것은 천국에서 지옥행 열차를 탄 것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물론 처음부터 쉽게 나간 것은 아니다. 직장도 제대로 구하지 못하고, 고시공부만 하겠다는 배짱이 나를 이렇게 외길로 몰아세운 것이다. 처음에는 용돈이나 벌면서 공부를 하기로 하였는데 용돈 벌 일은 없고, 어쩌다 찾은 곳이 인력공사였다. 처음에는 겁도 났었다. 생김새 자체가 샌님이고, 몸매도 그다지 우락부락하지도 못한 나에게 인력시장이란 곳은 꼭 범죄의 소굴같이 느껴졌던 것이다.

어쨌거나 용기란 용기는 다 짜내어 한번 아니 세 번이나 찾아갔다. 그렇게도 용기가 필요했었다. 첫 번째로 팔려나간 곳이 아파트 신축현장으로 일당 오만 원짜리였다. 어머니에게 물어서 바리바리 준비한 옷가지며 건축운동화를 신고 처음 일을 하는데, 세발구루마에 반토막짜리 목제를 싣고 넘어지기를 오전 내내 반복하느라 얼굴과 온몸은 땀투성이가 되었다.

그래도 꿋꿋하게 오전을 보내고 나니 점심을 먹고 한 사십분 동안 쉬는 시간이 있어 한쪽 그늘에서 잠을 청하는데 베니아판에 누워 하늘을 보니 세상 뱃속편한 것이 여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잠이 들면 어느새 한시가 되었고, 또 땀으로 범벅이 되도록 일을 하다보면 어느새 오후 다섯 시가 되고 일을 마친다. 그렇게 늦여름을 보내고 초가을이 오니 선선한 날씨와 함께 몸에서도 노가다 맛이 풍기기 시작 하였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날씨가 꾸물꾸물하더니 느닷없이 비가 와서 오후일은 하지 못하고 집으로 오는데 갑자기 나타난 곳이 순대국밥 집이었다. 나는 원래 육식을 잘 안 먹는지라 순대국밥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순간만은 시각과 후각적으로 순대국밥과 순대국밥 냄새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니 손님들 몇 명이 순대국밥을 맛있게 먹고 있는 중이었다. 순대국밥 한 그릇을 시키니 순대를 수북하게도 끓여 내놓았다. 아주머니가 내가 처음 먹는 것을 알아보았는지 조그마한 옹기그릇 속에 있는 떡밥 같은 것을 넣으라고 알려주고는 자기 자리로 가 앉았다.

순대국밥

나는 떡밥같이 생긴 가루를 몇 스푼 아니 가득 넣고 새우젓 한 두 스푼을 넣고 휘휘저어 한 숟갈을 훅훅 불어 입속에 넣으니 순대냄새와 순대의 쫄깃한 느낌이 혀를 통해 입으로 전달되었다. 한입 삼키니 왠지 맛이 너무 좋아 허겁지겁 먹다보니 어느새 뚝배기 한 그릇을 후딱 먹어치웠다.

코와 입으로 순대냄새가 진동하고 속은 열이 나고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는데 궂은 날씨로 인해 노곤했던 몸이 탁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막걸리 한 사발을 꿀꺽꿀꺽 마시니 얼굴이 얼얼해지면서 피곤이 풀리는 것이었다. 이제 서야 왜 노동꾼들이 순대국밥을 이야기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이것이 나와 순대국밥의 첫만남이었다.

그 후로도 노동일이 끝나면 언제나 순대국밥을 먹게 되었다. 오늘도 날씨가 춥고 서늘하다. 어딘가에 가서 순대국밥 한 그릇을 막걸리 한잔과 먹고 싶다.

김민석

대전 사는 50대 직장인.
세상살이에 어디 허물없는 사람 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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