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장수 경험담

고물상

철거덕 철거덕 오늘도 고물리어카를 끌고 가며 고물가위를 친다. “고물~ 사려, 고물~ 삽니다.” 목소리를 크게 내려 해도 소리는 목젖에 걸려 힘없이 나온다. 그러다 용기를 내어 다시 힘 있게 ‘고물~사려 고물~~ 삽니다’를 외친다.

어느덧 고물 리어카를 끌고 고물장사를 시작한지도 한 달여가 넘어 간다. 조수도 하나 두었다. 내가 선임이고 약간 정신지체가 있는 젊은이가 조수로 나를 따라다니고 있다. 청년의 어머니가 나에게 신신당부해서 조수 삼아 데리고 다니게 된 것이다.

무슨 목적이 있어 시작한 고물장수가 아니다. 세상경험이나 더 쌓으려고 동네에 있는 고물상에 들어가 덜렁 주민등록증을 맡기고 리어카 한 대를 끌고 나온 것이 계기가 되었다. 한 달여 동안 고물장수들과 어울리면서 가위 치는 법, 좋은 고물 고르는 법, 고물이 많이 나오는 곳, 전자제품 골라 중고전자 상인에게 넘기는 법 등을 배웠다.

고물가위도 그냥 치는 것이 아니라 오른손으로 비스듬히 잡고 네 번째 손가락을 살짝 집어넣고 철거덕 철거덕 쳐야한다. 그리고 ‘고물~~사려 고물~~삽니다’를 외치면 된다.

당시는 여름이라 우리 고물장수들은 슈퍼 앞에 모여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주고 받곤 했다. 나도 한 고물장수로서의 자태를 서서히 갖추어 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도 질세라 살아온 굴곡진 인생을 그들에게 자랑하기도 하였다.

비가 오는 날이면 고물 리어카를 남의 집 대문에 세워두고 박스를 밑에 깔고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잠을 청하기도 하였다. 남들은 그런 나를 불쌍하게 여길지 모르지만 천국이나 도솔천이 따로 없었다. 고물이 있으면 줍고 없으면 말고. 그래도 하루에 담배 값 정도는 벌 수 있었다. 그리고 남의 이목을 별로 타지 않는 성격이라 창피함 같은 것은 없었다.

나는 이런 생활을 수도와 같다고 생각을 했다. 어느 때는 초등학교 4학년 자연 교과서에 나오는 느티나무 밑에서 밀짚모자로 얼굴을 덮은 채 잠을 자는 남자가 나인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옛날 나는 그 자연교과서 표지 속의 남자가 늘 궁금했었다.

어느 날 아버님이 나를 부르시는 것이었다. 하시는 말씀이 이사를 가야겠다는 것이다. 내가 고물 리어카를 끌고 다니면서 집안 망신을 주니 창피해서 못살겠다는 것이다. 나는 불끈 했지만 고개를 숙이고 다른 동네를 찾겠다고 말씀드리고 다음날 우리 동네는 조수에게 넘겨주고 나는 다른 동네로 고물상을 찾아 들어갔다.

다른 동네는 낯설음이 있는데다 길도 잘 알지 못해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어느 날 노인 한 분이 나에게 따라 오라고 손짓하기에 따라가보니 어느 시장입구였다. 여기에 나오는 고물이 많으니 그걸로 먹고 살라는 것이었다. 기분은 상했지만 고개는 저절로 까딱 승낙하고 있었다. 나는 그길로 그 시장을 독점하였다. 수입은 예전 동네보다도 좋았다. 담배 값과 밥값은 나오니 말이다.

그런데 남의 동네다 보니 사람들과 친하게 지낼 수 없는 것이 힘이 들었다. 고물도 경쟁이 치열한데 사교성마저 없으니 힘이 들 수밖에 없었다. 역시 어디를 가더라도 자기 사는 데가 제일이다. 그럭저럭 한달 여 하다가 고물장사는 접고 말았다.

그리고 시작한 것이 ‘낫가마’라고 하는 중고물건 사고파는 일이었다. 조그마한 자동차로 시작 하였지만 이게 말이 사고파는 일이지 혼자서 냉장고나 세탁기를 싣고 온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대망의 사업 프로젝트는 접고 다시 직장을 구하면서 고물장사는 끝이 났다.

고물장수

지금도 간간히 고물장수를 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과 그들과 함께 먹던 아이스크림과 독점했었던 시장을 떠올린다. 우리는 행복을 돈과 물질로 측정하기도 하지만 조그마한 리어카로 우리 사회를 수놓았던 그분들이 우리의 형님과 아버지들이었음을 나는 느낀다.

어느 한 남자가 낡은 리어카에 고물을 가득 싣고 도로를 지나간다. 그 옛날 내가 리어카를 끌고 갔듯이. 그렇지만 그를 보는 나는 그날 여름의 나는 아니리라. 그를 보며 사진 한 장 찍어본다.

김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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