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

2018년 봄꽃
대전에도 봄이 도달했다.

요사이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면서 대지는 나무들과 꽃들의 향연에 휩싸여 있다. 봄에 대한 수많은 시(詩)가 인터넷과 서점에 난무한다. 나는 그러한 낭만적인 시를 보면서 지긋이 미소를 지어본다. 나는 시에 관해서는 문외한이다. 그런 내가 봄을 노래하고 싶어 펜을 잡아 보지만 바로 난감해진다.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퇴근 이후나 토요일, 일요일이면 하루를 집 주변을 산책하는 일로 마감한다. 그리고 저녁에는 명상하는 것이 전부이다. 그런데 요사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나도 모르게 꽃을 주의 깊게 살펴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오면서 대지와 하늘에서 벌어지는 대자연의 조화가 나에게도 스며들어가고 있는 모양이다.

갑자기 나무에서 새싹이 튀어나오고 꽃봉오리가 세워지더니 어느새 꽃들이 주위에 만발한다. 꽃향기를 맡아볼 생각으로 내 코를 꽃 속에 묻어보지만 아무런 향이 나지 않았다. 내 코가 드디어 담배에 중독되어버렸구나 하는 실망감이 밀려온다. 미미한 꽃향기라도 맡으려는 내 노력에 꽃들은 도움을 주질 않고 몇몇 꽃들을 구경하는 것에서 만족을 얻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게도 나비도 벌도 도통 보이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이 정도 꽃들이 만발하면 나비나 벌들이 분주할 텐데 말이다. 아마 요사이 잦았던 비 소식에 날씨마저 냉랭해서 그런가 보다. 그렇게 내가 꽃향기를 맡지 못한 이유를 날씨 탓으로 돌리니 한결 마음이 낫다.

오늘 걷다보니 꽃은 이미 만개 했다가 떨어지고 있다. 이 비바람 속에서도 봄은 익어가고 있고 이렇게 갑자기 여름으로 들어갈 태세이다. 카메라로 눈에 들어오는 예쁜 꽃들을 찍어서 지인들에게 보내기도 하지만 마음은 언제나 그윽한 향기를 간직했던 그 옛날의 꽃들을 그리워한다. 그러면서 마음 한편으로는 꽃향기를 담배가 앗아 가버린 것이라 생각하고 아쉬워해본다. 그래서 눈이라도 호강시키려 꽃들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고 있는 것이 아닌가싶다.

오늘 나는 나비 한 마리가 날아다니는 것을 보았다. 내 눈빛이 나비를 놓칠 일은 없다. 서서히 몸을 움직여 걸어가 본다. 그러나 나비는 이쪽저쪽 꽃들 사이를 춤추다 건너편으로 사라지고 나는 다른 나비가 있는지를 찾으며 아직 봄이 원숙해 지지 않음을 느껴본다. 그리고 또 아지랑이도 내 눈에 포착되지 않음을 원망해본다.

이렇게 나는 시각적으로는 봄이지만 막 태어나 아직 모습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아기 같은 봄을 느끼고 있다. 아직 봄은 안 온 모양이다. 그렇게 위안을 하면서 어두워진 거리를 뒤로하고 집으로 몸을 옮긴다. 내가 원하는 봄은 아직도 멀리 있는 모양이다.

지금 라디오에서 봄을 찬미라도 하듯 음악이 들려온다. 그러나 나는 눈으로 봄을 보고 코로 봄내음을 맡을 뿐 귀로는 봄을 느끼지 못한다.

이 즈음이면 마당 한가운데 탁자를 놓고 술이랑 전을 부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우리네 아버지와 아저씨들 그리고 젊은 날 술과 김치안주로 가로등 밑에서 신문지 깔아놓고 밤이 깊도록 봄을 느끼던 나의 친구들을 생각해 본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을 그분들은 어느 봄에서 또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겠지.

지금의 나이에 이르고 보니 수많은 봄을 맞이하고 또 수많은 봄을 맞았지만, 오늘 저녁 유난히 쌀쌀하고 내 코를 울리는 향은 없지만 눈에 잡힌 꽃들의 향연이 나의 마음을 고요하게 수놓고 있다. 조용히 음악과 함께 명상 속에서 그들은 언제나 봄의 모습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봄도 흐른다. 저 봄바람 이는 오늘밤, 나는 또다시 봄의 이부자리를 덮는다.

김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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