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상과 차례상 이렇게 다르지만···

차례상

설날이 내~내~내일 모레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올 설에도 차례상을 차려야지요? 오늘은 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이도 한 살 더 먹었고 마침 날씨도 그러니 한 번씩 그랬던 것처럼 오늘은 경어체로 모십니다. 이런 것이 깨알 같은 재미죠.

저희 집은 딱히 유교와 관련이 없음에도 관혼상제(冠婚喪祭) 가운데 상(喪)하고 제(祭)는 유교식 예법을 따르고 있습니다. 아시죠? 주자가례(朱子-家禮).

어찌나 엄격하게 따랐던지 아직까지 피곤합니다. 제가 오랫동안 두통으로 고생하는 건 아마 이런 것도 원인 중 하나였을 겁니다.

제가 이렇게 피곤한데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제사상에 올릴 과일을 고르는 것도 까다롭고, 밥도 찰진 정도를 따져서 정성이 있고 없고를 따졌으니까요.

숭늉 올릴 때 일반 수돗물을 사용했다간 난리가 납니다. 과일 깎는 것도 법도에 맞아야 하고, ‘두동미서’니 ‘숙서생동’니 하는 진설법도 무척 엄격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지금은 세상을 떠난 삼촌이 대나무 지팡이를 거꾸로 잡고 서 있다가 근본 없는 자식이라고 어느 친척 어른에게 맞아 머리가 깨졌던 일은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습니다. 제가 그 현장에 있었던 데다 삼촌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 이야기를 하셨으니 잊으려야 잊을 수 없었지요.

이제 그렇게 엄격했던 어른들 모두 세상을 떠나고 어느새 제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상례나 제례를 주관하는 입장이 되고 보니 그분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것도 같습니다. 그분들로서는 그런 행위가 정성의 표현이었다는 것을.

제사라는 풍습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몰라도 이왕 지낸다면 제대로 지내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이 말은 전에 ‘제사 날짜와 제사 지내는 시간은 이렇습니다’라는 글에서도 했었습니다.

제가 말하는 ‘제대로’는 예전의 방식을 무턱대고 따르거나, 배격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뜻대로 ‘정성을 다해서’하자는 겁니다. 가가례(家家禮)라 하여 집집마다 예법이 다른데 굳이 가례에 나오는 진설법을 그대로 따라할 필요는 없겠지요.

그래도 제가 어릴 때부터 보고 들었고 진설법을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아마 대다수 가정에서 이렇게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조율이시(棗栗梨枾); 대추, 밤, 배, 곶감
홍동백서(紅東白西): 붉은 과일은 오른쪽, 흰 것은 서쪽
좌포우혜(左脯右醯): 포는 왼쪽, 식혜는 오른쪽
어동육서(魚東肉西): 생선은 동쪽, 육류는 서쪽
두동미서(頭東尾西): 생선의 머리는 동쪽, 꼬리는 서쪽
숙서생동(熟西生東): 익힌 것은 서쪽, 날 것은 동쪽

상을 바라봐서 오른쪽이 동쪽, 왼쪽이 서쪽입니다. 음식들을 위의 규칙을 지키며 상에 다섯 줄로 차렸습니다. 기왕지사 소개하는 김에 조금 더 하겠습니다.

차례상과 제사상은 사과나 배와 같은 과일을 깎을 때 차이가 있는데, 차례상에 올릴 때는 절반 내지 삼분의 일만 깎지만 제사상에 올릴 때는 완전히 깎는다는 점이 다릅니다. 그리고 제사상엔 꼭 올려야 하는 밥과 국 대신 차례상에서는 설날은 떡국, 추석은 송편이 대신할 수도 있다는 점도 다른 점입니다.

이러한 진설법은 주자의 저서 가례를 참고했던 율곡 이이의 격몽요결(擊蒙要訣)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지만, 정작 격몽요결에는 그러한 설명이 없다고 합니다. 이상한 일이지요? 주자나 율곡을 들먹이며, “이래야 하느니” 혹은 “저래야 하느니” 자못 설명이 엄숙했는데 정작 그런 내용이 없으니 말입니다.

아마도 어느 유학자 조상님께서 ‘조율이시’니 ‘홍동백서’니 하는 4자로 그럴듯하게 예법을 만들어 후손에 물려준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정확한 것은 아니고 추측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고 정성입니다. 정성만 있다면 물 한 그릇만 상에 올려도 조상님은 흐뭇해하실 겁니다. 그렇다고 정말 물 한 그릇만 올린다면 정성이 부족해 보일 테니 그것은 곤란하겠군요. 마음이 옷이라면 벗어서 뒤집어 보여줄 텐데요.

한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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