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성이 엿보였던 영화 자산어보

자산어보
영화 자산어보 스틸 컷.

썼다 지우고, 썼다 지우고, 그렇게 썼다 지우길 수차례. 도무지 앞으로 나가질 못한다. 날씨 탓인가 싶어 비 오는 날 적어보기도 하고, 맑은 날 적어보기도 했는데 마찬가지다. 뇌가 멈춘 느낌이다.

“글쓰기가 실패하는 까닭은 작가가 자신이 다루는 글감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해서다. 아는 게 충분하면 느낌도 충분하다.”라고 윌리엄 슬론이 말했는데, 그가 옳았다.

언젠가부터 책을 읽을 때 국내 작가의 작품일 경우 출판사가 어딘지 작가는 어떤 사람인지 따지기 시작했고, 영화를 보더라도 국산영화는 멀리했다. 불온서적 불온영화가 많은 탓이다. 이렇게 스스로 금제를 하니 보고 들은 것이 없고 따라서 삭히고 뱉을 것도 없다.

그랬던 내가, 그렇게 세월을 허비했던 내가 국내 영화를 봤다. 자산어보! ‘베니스의 개성상인’을 쓴 오세영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제작한 영화다. 오세영이라면 금제를 풀어도 될만한 이름이다.

소설 자산어보는 천주교를 탄압한 신유박해 때 흑산도로 귀양을 갔던 정약전의 이야기를 다룬 수작이다. 실제, 같이 귀양을 갔던 동생 정약용이 귀양지인 강진에서 목민심서, 경세유표와 같은 책을 지었을 때,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어류도감이라고 할 수 있는 자산어보를 지었는데 오세영이 그대로 소설의 제목으로 삼았다.

자산은 흑산을 정약전이 달리 표현한 것이다. 바닷물이 푸르다 못해 검푸른 빛이 돌아서 멀리서 보면 산과 바다가 모두 검게 보여 흑산이라 했는데, 정약전은 귀양의 땅이 된 흑산이란 이름이 무섭다 하여 흑(黑)을 자(玆)로 바꾸어 사용했다.

영화 자산어보는 소설과 달리 등장인물이 단순하고 이야기의 전개도 단순하다. 단순하다 보니 영상마저 수묵화처럼 흑과 백으로 단순하게 처리했는데 그 단순함이 어우러져 예술로 승화한 느낌이다.

소설 자산어보에는 없는 웃음 코드가 영화엔 장치되어 있다. 등장인물 가운데 몇몇이 그 역할을 충실하게 해냈는데, 자칫 진지하여 무거울 수 있는 주제의 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감상하도록 도움을 준다.

영화는 목민심서와 자산어보 사이에서 갈등하는 창대라는 인물의 변화를 표현하는 것이 핵심으로, 창대는 정약전과 더불어 이야기를 끌어가는 큰 축이다.

목민심서와 자산어보는 각각 성리학과 실사구시의 상징으로 표현되고, 성리학을 통하여 출세하고 싶은 창대는 정약전과 거래를 통해 글공부를 배운다.

창대라는 인물은 실제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에도 몇 번 거론된 것으로 보면 실존했던 현지인으로 생각되는데, 영화에서는 돈 많은 양반의 서자(庶子)인지 얼자(孼子)인지 하여간 양반 피가 약간 섞인 인물로 등장한다. 그래봤자 정약전이 보기엔 ‘썅노무 새끼’일 따름이지만.

창대는 정약전을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를 하다 그가 대단히 뛰어난 인물임을 알게 되지만, 그렇게 훌륭한 인물이 왜 세상을 위해 목민심서와 같은 멋진 책을 짓지 않고, 하찮은 물고기 책이나 짓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스승이 된 정약전의 심부름차 정약용이 유배 중인 강진을 몇 차례 왕래했던 창대는 점잖은 정약용의 모습에서 자신의 길이 성리학에 있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의 소개는 실례가 되므로 생략.

보통 영화가 책보다 못하다고 한다. 실제 그렇기도 하고. 글로 풀어내는 장구함이나 세밀함 등을 러닝타임이 정해져 있는 영화나 드라마가 따라 하기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해서 영화는 책 속의 어느 한점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데 영화 자산어보는 책 속에 없는 점에 집중하여 성공했다.

옥에 티라면 등장한 배우 가운데 경계해야 할 인물이 있었다는 점이다. 영화 제작사나 연출자는 배우를 캐스팅할 때 주의하면 어떨까 싶다. 배우가 연기 외의 일로 유명하면 몰입감을 떨어트리니까. 싫다면 말고.

한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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