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미약? 술에 취한 범행 도리어 가중처벌해야

술 권하는 사회

우리나라는 술에 대해 전통적으로 상당히 관대하다. 일단 술을 제대로 마실 수 있어야 영웅호걸에 들어가며, 술은 관계를 위해서 꼭 필요한 매개라고 생각한다. 술이 있어야 대화가 되고, 쌓인 감정은 술 한잔하며 털어버리는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서이다. 게다가 술에 취한 실언이나 실수는 술 때문에 그렇다는 말 한마디로 용서되는 그런 관행을 갖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공직자들이 술로 인해 빚어진 일들은 실수라는 말로 용서가 되기도 한다. 현진건의 소설 술 권하는 사회는 부조리하고 절망적인 현실 앞에 술 밖에는 다른 것이 없다는 식으로 현실의 도피처로 술을 말하기도 한다.

이런 우리 사회적 풍토가 지금은 법에도 적용이 되어 있다. 무슨 짓을 저질러도 일단 술에 취해서 그렇다고 하고, 그것이 입증되기만 하면 그 죄의 형량은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성범죄에 있어서 더욱 그러한 것 같다. 가해자가 술에 취해서 그렇다고 발뺌하면 피해자의 아픔과 고통은 외면한 채 그 벌을 감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범죄자들은 이를 최대한 악용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성경은 이와는 전혀 다른 판결을 내린다. 구약성경 레위기 10장에 보면 대제사장 아론의 장자가 제사의식을 진행할 때 규례대로 하지 않다가 하나님께 징계를 당해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나온다.

향단의 불을 지정한 곳에서 가져오지 않고 출처가 불분명한 것을 가져다 쓴 때문이었다. 이들이 이런 일을 저지른 이유는 바로 술에 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레위기 10장에는 제사장이 성소의 일을 할 때 술에 취해서는 안 된다는 규례를 새로 만들었던 것이다.

술에 취해서 하지 않아야 할 일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들의 죄를 옹호하거나 덮어줄 수 있는 빌미가 되지 못했고, 도리어 그런 술에 취한 모습은 더 큰 질책을 받을 거리가 된 것이었다. 그래서 당시 대제사장의 뒤를 이을 넘버 투와 쓰리가 한 순간에 죽임을 당한 것이었다.

술이라는 것이 우리 인간의 삶에 좋은 활력소가 되기도 하지만, 또한 이성을 잃게 하고, 만용을 부리거나 주정을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부작용도 크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실 때 역시 조심해서 마셔야 하며,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코카인 등의 마약은 소지하기만 해도 큰 처벌을 내린다. 그 이유는 그것이 자신의 몸만을 망칠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해악이 되기 때문이다. 술 또한 그런 해악이 있는 것이기에, 법적으로 마시는 것이 허용된 물질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마약은 소지만 해도 형사처벌을 하면서 술은 남에게 피해를 입혀도 도리어 그 처벌을 감해준다는 것이 아무리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술을 마실 때 자기의 이성과는 달리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누구나 다 안다. 알면서도 마시고, 그것을 절제하지 못하여 범죄를 저지른다면 이는 도리어 그 범죄를 두둔해야 할 것이 아니라 가중처벌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사람은 부족하고 연약하기 때문에 실수도 하고, 때로는 원치 않는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 하지만 저지른 범죄는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법의 정신일 뿐 아니라 성경의 정신이기도 하다. 또한 그 저지른 범죄에 대해 그 사정을 충분히 감안해 주어야 할 사정도 있고, 이를 살펴야 하는 것 역시 법의 정신이고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살펴주어야 할 사정이 술은 아니어야 한다. 왜냐하면 충분히 그 위험성을 알고 있고, 그럼에도 그것을 절제하지 못해 벌인 일이라면 그것은 술 탓이 아니라 자기 탓인 것이다. 알고도 저질렀다면 그건 더욱 악질적인 범죄이며 이는 가중처벌해야 할 사안이다.

박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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