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배설물도 사랑하세요

반려견
반려견의 배설물을 치우는 사람.

싱그러운 봄이다. 겨우내 “알럽 뱅콕”을 외치며 두문동 사람처럼 두문불출하다 코끝을 스치는 신록의 향기에 회가 동하여 산보를 나섰다. 오래도록 갇혀 녹슨 몸에 기름칠은 못하더라도 먼지는 털어내야지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리엔 봄옷으로 갈아입은 반려견이 주인을 대동하고 산책하는 모습이 눈에 많이 띄었다. 반려견과 사람의 행보로 보아 사람이 산책길에 반려견을 데리고 나온 것이 아니라 반려견 산책하는데 주인이 따라 나온 것이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반려견들의 사회적 지위가 꽤나 높아졌다. 반려견에 대한 복지시설도 많이 좋아져서 동물병원은 기본이고, 호텔이나 카페에 이어 최근엔 전용 유치원도 생겼다. 견주는 매일 반려견이 가방 속에 넣어오는 알림장을 보고 준비물을 챙겨준다고 했다.

이들의 반려견 사랑은 눈물겨울 정도여서, 얼마 전엔 어느 반려견의 죽음을 슬퍼하는 애견가의 영상이 페이스북에 공개되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이 있었다. 필자도 그 영상을 보았는데 어찌나 애달파하는지 ‘개는 개답게’라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던 필자의 마음마저 울적했었다.

그런데 모처럼의 산책길에서 깨달음을 얻었으니, 이는 양심불량 애견가가 산책로에서 행한 비양심적 행동덕분이다.

(某) 반려견 하나가 산책로에서 똥 싸는 것을 필자가 벤치에 앉아 쉬면서 목격하게 되었다. 그 반려견이 똥 누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던 주인은 똥을 다 누자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어 반려견의 똥꼬를 닦아주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왠지 수상쩍었다. 필자는 범죄자 특유의 페르몬을 맡으며 안보는 척 그 사람을 관찰했다.

주인은 다시 가방에서 무슨 비닐봉투를 꺼내더니 반려견 똥꼬를 닦은 휴지를 그 속에 넣고, 반려견이 싸지른 똥을 치우는 자세를 취했다.

“음! 역시”

필자가 자라던 시절에는 길거리에서 개가 똥을 싼다고 치우는 주인도 없었을 뿐더러 개똥을 치우지 않는다고 시비 거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사회가 성숙해서인지 누가 똥 치우라는 말을 하지 않더라도 저렇게 똥을 치우는구나 하며 흐뭇해하려던 차인데 그 주인은 비닐에 똥을 넣는 자세만 잡을 뿐 계속 오가는 사람을 살핀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은 짐작할 수 있으리라. 맞다. 결국 그 주인은 오가는 사람이 뜸한 틈을 타서 똥을 치우는 시늉만 거푸 하다가 그냥 가버렸다.

반려견이 사랑스럽다고 반려견이 싸놓은 똥까지 사랑하란 말은 못하지만, 그 뒤처리를 깔끔히 하는 것이 애견인으로서의 올바른 마음가짐일 것이다. 필자는 그냥 가버린 그 주인의 마음속에 약간의 양심이 있어 그렇게 치우는 시늉이라고 했을 것이라 믿는다.

공자는 길 한복판에서 오줌을 싸는 불한당은 피해서 옆으로 돌아 갔지만, 길가에서 오줌을 누는 사람은 호되게 나무랐다. 그러고는 그런 스승의 행동을 이해 못하는 제자들을 향하여 “길 한복판에서 오줌 싸는 놈은 ‘인간망종’이라 포기할 수밖에 없지만, 길가에서 오줌 누는 사람은 그나마 ‘개선의 여지’가 있어 나무란 것이다”라고 하였다.

오늘처럼 녹음이 푸르고 싱그럽게 바람이 불어오는 날에, 반려견의 똥을 치울지 말지 갈등을 겪었을 그 개 주인을 생각하며 필자는 공자를 떠올렸다. 기척을 내어 누군가 지켜본다는 느낌을 줬었더라면 그 사람은 아마도 개똥을 치웠을 것이다. 그 반려견 주인에게 양심을 지키도록 촉구하지 못한 필자는 성인의 가르침을 실천 못한 것이 아니라 오지랖을 부리지 않은 것이라 자위할 수밖에 없었다.

바람은 싱그럽게 불고 녹음은 짙은 향을 뿜어내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애견가들이여! 반려견이 사랑스러우면 배설물도 사랑하시라.

한덕구

덕구일보 편집장.
제가 바담 풍하더라도 바람 풍으로 알아묵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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