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보다 나은 드라마 미생, 이성민의 연기력이 돋보였다.

드라마 미생
드라마 미생, 왼쪽부터 장그래 역의 임시완, 오과장 역의 이성민, 김대리 역의 김대명.

추석연휴, 케이블채널에서 드라마 ‘미생’ 전편을 방송했다. ‘책보다 영화가 못하다’는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시청했다. 러닝타임을 기준으로 삼자면 영화보다야 드라마가 풍부한 표현이 가능하겠지만 책보다야 못할 터이다.

그러나 세상엔 항상 예외적인 상황은 있는 법, 드라마 미생은 원작보다 서너 배 이상 낫다. 책으로 나온 미생을 다 읽은 입장에서 드라마를 1회부터 3회 중간까지 꼼꼼하게 시청한 후 내린 결론이다.

일반적으로 책보다 나은 영화나 드라마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미생의 경우 다시 말하지만 원작보다 드라마가 낫다. 이런 판단의 근거는 출연자들의 연기력이다. 드라마 미생에 출연한 연기자들의 프로패셔널한 연기는 글과 그림으로만 표현된 웹툰의 표현력을 압도하고도 남아 보였다.

드라마에는 임시완(장그래), 이성민(오과장), 김대명(김대리), 안영이(강소라) 등이 출연했는데, 특히 오과장 역할을 했던 이성민의 연기는 원작의 오과장이라는 캐릭터를 200% 살렸을 뿐만 아니라 드라마 미생 전체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이성민을 보면서 몸짓, 표정, 목소리 등 연기가 어떤 것인지 진수를 맛보는 듯했다. 원작 속의 오과장이 지면 밖으로 나와 TV화면 속으로 들어가더라도 이성민의 신명어린 연기력은 따라가지 못하지 싶다.

그런 이유로 원작인 웹툰 미생의 주인공은 ‘장그래’지만, 드라마 미생의 주인공은 오과장 이성민이 더 어울린다. 그러자면 제목도 미생이 아니라 ‘상사맨’으로 바꿔야겠지만.

이성민과 함께 원작의 캐릭터보다 더 나아보였던 인물은 김대리 역의 김대명이다. 김대리는 원작에서 주요인물이긴 했지만 그렇게 눈길을 끄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그런데 드라마에서는 없으면 섭섭할 뻔 했다. 김대명은 김대리를 유능하면서도 의리가 있는 인물로 시청자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켰다. 이는 원작에서 느끼기 힘든 부분이었다. 결론적으로 이성민과 함께 김대명이 원작의 김대리보다 낫다. 모두 김대명의 연기력 때문이다.

미생(未生)이란 집이나 대마 등이 살아있지 않은 상태를 뜻하는 바둑용어이다. 죽은 돌인 사석(死石)과는 달리 어떻게든 두 집을 만들어 완생(完生)할 여지가 있는 것이 미생이다.

완전히 살아 있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완전히 죽은 것도 아닌 상태가 미생인데, 흡사 인생의 출발점에 선 사회초년생들을 연상시킨다. 어느 정도 산 모양을 갖추고 있는 오과장이 주인공이 되지 못한 이유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드라마는 드라마이고, 웹툰은 웹툰일 뿐, 미생은 현실과 괴리감이 있다. 픽션을 현실과 혼동하여 드라마 속 미생들처럼 행동했다가는 사석이 되기  딱 좋다. 바둑에서는 두 집을 내면 산다지만 인생에서 완생은 어떤 모양일까?

한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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