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련의 음악으로 행복나누기(2) 내 기억 속의 사람들

발달장애

첫사랑이나 첫 키스의 상대처럼 살다보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내게도 잊지 못할 사람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아이들이 있다. 나의 40년 인생을 다시 돌아보게 한, 그리고 6년이 지난 지금에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귀한 아이들.

그 아이들과 처음 인연을 맺은 때는 2012년 봄이었다. 성악 개인지도를 받던 제자의 어머니 소개로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한 아이의 어머니를 만나면서부터이다.

작고 마른 체구였지만, 표정이 단단했던 그 어머니는 ‘발달장애인가족합창단’을 만들고 싶다며 나에게 합창단 지휘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했다. 아이들뿐 아니라 가족이 함께하기 때문에 의미가 있으며, 연습 내내 어머니들이 옆에서 아이들을 케어care할 테니 염려하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순간 많이 망설였다. 그 당시만 해도 발달장애가 어떤 것인지, 그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해야할 것인지 전문적인 지식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정보도 갖지 못했던 터라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어쩌면 그 판(?)에 끼어들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망설임에 한몫 했을 수도 있다.

입가에 살짝 미소를 머금으며 갈등하는 표정을 보이지 않으려고 무지 애썼으나, 어서 결정을 하라는듯한 어머니의 표정은 처음 나를 보았던 단단했던 표정과 콜라보가 되면서 애쓰는 나의 마음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이런, 그 표정 싸움의 시간이 불과 5초 남짓? 내게는 족히 1시간은 되어 보였다. 더 버티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아니, 어머니의 그 표정이 입을 열게 했다고 해야 덜 억울하다.

“저는 아이들이 노래를 잘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자신 없습니다. 그러나 아이들과 노래로 노는 것이라면 해볼 수 있습니다. 부모님들께서 그 부분을 동의해주신다면 한 번 해보겠습니다.”

어머니는 다행히 아이들과 노래로 노는 것에 동의를 해주었고, 그렇게 그 아이들과 노래 놀이가 시작되었다.

노래 놀이 첫날 첫 시간. 태어나 처음으로 맞이하는 발달장애 아이들. 어떻게 이 아이들을 대해야 할지, 첫인사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아이들 반응은 어떨지 살짝 두려웠다.

아이들이 엄마의 손을 잡고 하나 둘씩 연습실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발달장애의 정도 차이가 심했다. 어떤 아이는 거의 비장애인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대화가 통했고, 어떤 아이는 비명에 가까운 외마디밖에 소리 낼 줄 몰랐다. 난감해졌다.

첫인사를 하고 간단한 발성연습을 하려고 했던 나의 수업계획이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이 들었다. 모두 모였으나,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특성의 아이들로 인해 연습실 안은 부산하기 짝이 없었다. 잠시 당황했던 마음을 빨리 추스르고 단 몇 초 만에 수업계획과 연습 난이도를 수정했다.

연습시간이 10분을 넘어가도 부산함이 진정 될 기미가 없어 그냥 아랑곳하지 않고 연습을 시작하겠다고 발표한 뒤, 아이들과 부모님들을 향해 첫인사를 하고 오늘의 수업계획에 대해 이야기 했다. 무슨 정신으로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조차도 나지 않는다.

아무튼, 첫인사가 끝나고 박수 소리가 난 걸 보니 의미 전달은 되었다 싶다. 그러나 정작 의미전달이 되어야 할 아이들은 전혀 딴 세상에 와 있는 듯하다. 입을 벌린 채 침을 흘리고 있는 아이, 연습실 의자를 두드리는 아이, 계속 몸을 앞뒤로 흔드는 아이, 괴성을 지르는 아이, 뛰어나가는 아이, 우는 아이…

그래도 시작해야 했다. 알아듣던 못 알아듣던 가족들은 알아듣겠지 하며 기초적인 발성을 설명하고 ‘아-아-아-아-아’ 스케일 연습을 했다. 예상대로 아이들은 자기 세계에 빠져서 이쪽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발악하듯 불러재끼는 어머니들의 찢어지는 고음만 들릴 뿐이다.

난이도를 높여 곡 연습으로 들어갔다. 인지능력이 많이 떨어져 글자를 알지 못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라 곡을 연습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싶었지만, 발성연습을 끝낸 어머니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며 기대에 찬 표정으로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기에 억지춘향으로 곡 연습을 시작했다.

곡명은 ‘노래는 즐겁다’ 이 곡은 어머니들의 선택이었다. 후에 발표회도 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아, 발표회도 해야 하는구나!’ 점점 마음은 무겁고 어깨는 쪼그라들었다.

아이들이 가사를 인지할 수 있도록 가능한 입을 크게 벌려 가사를 불러주었고, 가능한 아이들 한명, 한명 눈을 마주치며 함께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두 주가 흘렀다.

그날도 변함없이 연습장소에 미리 도착하여 아이들과 가족들을 맞이했다. 어머니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누군가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우리 아이가 노래를 틀어 달라고 했어요!”

이야기를 나누던 우리는 일제히 고개를 돌려 소리 나는 곳을 돌아봤다. 그곳에는 평소 눈은 항상 풀려있고, 벌려져 있는 입에서는 늘 침이 흘러 떨어지고, ‘아~~’ 하는 괴성 외에는 소리를 낼 줄 모르는, 아이들 중 가장 장애정도가 심한 아이가 소리친 어머니와 함께 있었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흥분되어 있었고, 얼굴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궁금해진 나는 얼른 물어봤다.

“어머니, 00이가 무슨 노래를 틀어달라고 했나요?”

“예, 우리가 배우는 노래요! 핸드폰을 가리키면서 ‘응응~’ 하기에 ‘노래 틀어줘?’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틀어주는 노래마다 다 아니라고 고개를 젓는 거예요. 그때 우리가 배우는 노래가 생각나서 그 노래를 틀어주니까 응응~ 하면서 가만히 있는 거 있죠!”

와우!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눈은 풀려있고, 입은 닫혀있어 아무것도 듣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고정관념이, 고질적인 선입견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다.

그날, 그 아이로 인해 우리는 더욱 고조된 분위기에서 연습을 했다. 모두들 이 아이를 통해 그리고 음악을 통해 우리 아이도 희망이 있다는 바람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더욱 목청 높여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그날 이후로 그 아이의 모습은 눈에 띄게 바뀌었다. 노래만 시작하면 몸을 앞뒤로 심하게 흔든다거나,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로 노래를 따라 한다거나, 박수를 치며 좋아하는 등의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그 아이만 변한 게 아니다. 우리 가족들의 비전이 바뀌었고, 대화 내용이 바뀌었고, 그리고 노래 소리가 바뀌었다. 음악으로 자폐성을 가진 발달장애 아이들의 인지 능력이 조금이라도 향상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 것이다.

전혀 체계적이지도 전문적이지도 않은 그저 놀이로 시작했던 노래 수업이었음에도, 단지 노래만 불렀을 뿐인데도 아이들의 모습이, 인지 능력이 변화 되었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항상 이 즈음에서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장애아동을 위한 특수음악교육이 체계를 잡지 못하고 전문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장애아동도 발달장애, 자폐성 발달장애, 지적장애, 지체장애 등 여러 부분의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이들의 연령 또한 다양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장애와 연령별 전문 특수음악교육 커리큘럼이 짜졌으면 좋겠고, 전문 특수음악교사를 양성하여 한 교사에 3명 정도의 아이들을 보조교사 1명과 함께 전담할 수 있게 하면 좋겠다.

아마도 이렇게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커리큘럼 안에서 특수음악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인지능력 향상은 물론 정서적 안정과 비장애인과의 교류도 가능해질 것으로 본다.

우리 발달장애가족합창단은 그렇게 음악을 통해 아이들의 발달에 발전 가능성을 보았고, 희망 또한 갖게 되었다. 합창단 연습이 있는 날이면 어머니들은 피아노를 가르칠까? 바이올린을 가르칠까?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우리는 처음부터 계획했던 발표회도 준비했다. 외마디라도, 몸짓으로라도, 이도 저도 되지 않으면 그냥 서 있기만 하더라도 무대에 세우고, 아이들이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자신감을 심어 주자는 것이 우리들의 생각이었다.

그렇게 발표회도 갖고, 노래 수업으로 음악을 알아가고, 그 음악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며 우리 아이들은 커갔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일 것이다.

누구에게든지 기억에 그리고 가슴에 묻어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나에게 큰 감동을 준 사람일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묻어두되 그 감동은 꺼내어 아낌없이 나누자. 나누고 다 비워야 또다시 채워지는 하늘의 신비한 법칙을 믿는다면.

황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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