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자 작가 포토에세이(15) 왕산해수욕장의 노랑 개

왕산해수욕장
왕산해수욕장 ⓒ김인자

할머니, 바다, 비.
내가 좋아하는 세 가지

갑자기 바다를 보러가게 되었다.
내가 사는 집에서 한 시간쯤 차로 달리면 그곳에 내가 좋아하는 바다가 있다.

왕산해수욕장
한적한 겨울바다

물이 빠진 바다는 인심이 좋다.

“어서 와.”
“내게로 가까이 와.”

부부도 한 집에서 오래 함께 살다보면 서로 닮아간다고 했던가? 아래 누워있는 바다색과 위에 떠있는 하늘색이 똑 닮았다. 바다도 하늘도 똑같이 회색빛이다.

동해바다는 언제 어느 때 가서 봐도 늘 설레고 흥분이 되는데, 서해바다는 동해바다랑은 마음이 좀 다르다. 생각도 깊어지고 오래 바라다보고 있으면 쭈르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바다를 향해 살살 걸어 들어가고 있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노란색 개 한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내게로 다가온다.

“어서 와.”
하며 온몸으로 반겨주는 것 같다.

낯선 바다
낯선 개

그런데 조금도 두렵지가 않다

“너 어디서 왔니?”

내가 물었다.
그러자 노랑 개는 대답 대신 내 발밑에 와서 킁킁 냄새를 맡는다.

위험한 물건은 소지하지 않았나?
위험한 사람인가? 아닌가?
검사하나?

“너의 구역이니?
나, 들어가도 돼?”

내가 다시 물었다.
그러자 노랑 개는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본다.
그 눈빛이 참으로 선선하다.

“고마와”

내가 쪼그리고 앉자,
노랑 개가 내 발밑에 와서 발라당 눕는다.
건포도처럼 바짝 쪼그라진 검은 찌찌가 보인다.
배를 따라 쪼르르 매달린 것이 꼭 단추 같다.
얼굴은 강아지처럼 어려 보이는데 엄마개인가보다.
쪼그리고 앉아 노랑개의 등을 살살 긁어준다.
그러자 노랑개가 발 하나를 든다.

“야아~ 그러지 마아. 부끄럽게 너, 아무데서 그렇게 다리를 번쩍번쩍 들면 되냐아?”
노랑개의 다리를 내려 궁뎅이를 툭툭툭 세 번 두드렸다. 그러자 노랑개가 등을 갯벌에 부비며 좋아라한다.

왕산해수욕장
왕산해수욕장 ⓒ김수미

“너 야단치는 건데 그케 좋냐?”
웃으며 노랑개의 턱밑을 간질간질 간질어 주었다. 등도 살살 쓸어주고 궁뎅이도 한 번 더 투덕투덕 두들겨 주었다.

“노랑아, 너 이제 고만 일어나. 찬데 오래 누워있으면 얼굴 돌아간다.”
그 말을 알아들었나? 내 말이 끝나자마자 신기하게도 노랑이가 발딱 일어선다.

물이 빠진 갯벌을 지나 바다 속으로 걸어가 본다.
노랑개도 나를 따라 걷는다.

왕산해수욕장
왕산해수욕장 ⓒ김수미

바닷물 가까이에 가서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그런데 노랑 개는 계속 바다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야아~ 고만 들어가아~ 너 그러다 물에 빠져.”
내 소리를 들었는지 말았는지 계속 바닷물 쪽으로 걸어가는 노랑 개.

바닷물 속에 빠질까봐 걱정하는 나
익숙한 걸음으로 계속 걸어가는 노랑 개.

왕산해수욕장
왕산해수욕장의 노랑개 ⓒ김인자

“노랑아, 고만 가아. 너 그러다 진짜 물에 빠져어.”
손나팔을 만들어 고함치는 내 소리를 들었나보다.
내 걱정 말을 노랑개가 들었나보다.

바다를 향해 거침없이 걸어가던 노랑개가 내 손나팔 고함소리에 고자리에 딱 멈춰 섰다. 그리곤 바다를 바라보며 한참동안 고자리에 꼼짝 않고 서있었다.

왕산해수욕장
왕산해수욕장의 노랑개 ⓒ김인자

“노랑아, 너 무슨 생각해?”

발라당 누워 쪼그라진 찌찌를 보여주던 아까의 노랑이는 짠한 마음이 들었는데,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서있는 지금의 노랑 개는 왠지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대체 노랑 개는 무얼 보고 있는 걸까?
무슨 생각을 할까?

바다보다 더 먼저 반갑게 나를 반겨주었던 노랑 개.

집에 돌아와 개 간식을 챙기며 뒤늦은 후회를 해본다. 진작 개껌이랑 간식이랑 가방에 넣어가지고 갈걸.

낯선 곳에 갔을 때 조금의 의심도 없이 그저 반갑게 맞아주었던 노랑개의 마음을 배운다.

혼밥, 혼술, 혼행, 혼영 등 ‘홀로 라이프’ 시대가 회자되는 현실. 요즘 사람들은 거의 완벽한 외톨이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래도 가끔은 나에게 먼저 손 내밀어 아는체 해주는 따뜻한 마음이 그립다.

먼저 손 내밀어 인사하기
안녕, 어서 와.
잘 지내지?

낮과 밤이 바뀐 푸른 시간
그러니까 푸른 지구의 푸른 시간
지금 이 시간 노랑 개는 무얼 하고 있을까?

김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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