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

웃는 얼굴 찡그린 얼굴
같은 얼굴이라도 웃느냐 찡그리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사람은 40세가 지나면 반드시 자기의 얼굴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이 말했다. 그 사람의 성격이나 인생관 등이 40세쯤이면 흔적을 드러내기 때문에 평상시 마음보를 곱게 가지라는 뜻이다.

아닌 게 아니라 사람의 인상만 봐도 평상시 화를 잘 내는 사람인지 온유한 사람인지 느낌이 온다. 그래서 에이브러햄 링컨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링컨의 이 말을 뒷받침하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바로 ‘예수와 유다의 모델’에 관한 이야기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예수가 수난을 당하기 전날 밤 12제자와 함께 만찬을 드는 장면을 그리게 되었다. 이때 다빈치는 예수의 모델을 찾아 로마 시내를 헤매다가 변두리 교회당에서 기도하던 한 청년을 보게 되었다.

빛나는 눈동자, 맑고 기품 있는 얼굴이 예수의 모델로 안성맞춤이었다. 다빈치는 청년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모델이 되어 줄 것을 부탁했고, 청년은 쾌히 승낙을 했다.

예수 그림이 완성되고 다빈치가 청년에게 사례금을 건네자 거절하며 “저는 돈을 바라고 선생님의 모델이 되어 드린 것이 아닙니다. 길이 남을 예술품이 이루어지는데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모델이 되었을 뿐입니다”라고 하면서 홀연히 자리를 떠났다.

그 후 그림그리기에 몰두하던 다빈치가 예수를 팔아먹은 배신자 유다의 모습을 그려야 하는데 도무지 유다의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유다의 모델을 찾아 로마 시내를 헤매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범죄와 마약환자의 소굴인 뒷골목에서 유다의 모델로 적합한 사람을 보게 되었다. 그 사람은 마약과 알코올 중독자였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사기, 도둑질, 도박 등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고 다닐 비열한 위인임이 분명해 보였다.

다빈치가 그 사내에게 모델이 되어 줄 것을 부탁하자 그는 돈만 많이 준다면 못할 것이 없다면서 승낙했다. 다빈치는 그 사내에게 많은 돈을 주기로 하고 자기의 화실로 데려왔다.

다빈치가 그 사내를 모델로 유다의 모습을 그리는데 그림이 완성되어 갈 무렵 그 사내가 느닷없이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영문을 모르는 다빈치가 그 이유를 묻자, 사내는 울음을 삼키며 말했다.

“선생님, 정말 부끄럽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처음 이 그림을 그릴 때 예수의 모델이 되었던 사람입니다.”

깜짝 놀란 다빈치가 그 사내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마 믿지 못하실 겁니다. 그러나 분명히 저는 그때의 그 모델입니다. 그 후 저는 도박에 빠졌고, 술과 아편까지 입에 댔고, 온갖 나쁜 짓과 더러운 짓을 하다가 이런 몰골이 되었습니다. 성스러운 예수의 얼굴이었던 제가 지금은 악하고 더러운 유다의 얼굴로 변하게 되었으니, 정말 저는······.”

그 사내가 말끝을 맺지 못하고 다시 흐느꼈다. 다빈치는 그제야 사내의 모습에서 예전 예수 모델 때의 모습을 어렴풋이 찾아볼 수 있었다. 다빈치는 울고 있는 사내를 위로하며 말했다.

“정말 알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오. 그렇지만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이제라도 지난날 예수의 모습을 간직했을 때의 생활로 돌아가시오. 그렇게 한다면 본 모습을 찾을 것이고, 하나님도 용서할 것이오. 그러니 이제 울음을 그치시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그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다.

최후의 만찬
레오나르도 다빈치 作,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 1495~1497)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의 후원자였던 루도비코 스포르차의 요청으로 그린 ‘최후의 만찬’은 이탈리아 북부 도시 밀라노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Santa Maria delle Grazie) 성당 수도원의 식당 벽화이다.

420×910cm의 거대한 작품인 ‘최후의 만찬’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1495년 제작에 착수하여 1497년에 완성했다. 정확히는 2년 9개월 걸려 완성한 작품인데 알려지기로는 인물 작업에 걸린 기간은 3개월가량이라고 한다.

이 일화를 굳이 에이브러햄 링컨의 명언에 대입하지 않더라도 ‘착한 마음을 가져라’하는 답이 나오는데, 하나의 의문점이 생긴다. 2년 9개월 만에 사람의 얼굴이 극과 극으로 몰라보게 변할 수도 있을까 하는 점이다.

조금은 변할 수 있을 것이나 몰라볼 정도로 바뀌기에는 그 기간이 턱없이 짧다. 아마 인문학적 소양이 뛰어난 사람이 어떤 진실한 사실에 약간의 허위의 사실을 섞음으로써 교훈을 주려는 의도로 지어낸 이야기가 아닐까?

영화나 소설에 이러한 ‘섞어’ 방법(?)이 많이 이용되는데, 감독이나 작가의 의도에 따라 ‘교훈’이 되기도 하고 ‘선동’이 되기도 한다. 히틀러의 오른팔 괴벨스가 이런 방법으로 ‘선동의 달인’이 된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예수와 유다의 모델’ 일화가 사실인지 거짓인지를 가려야 한다는 주장이 없는 것은 ‘진실규명’ 보다 이 일화가 주는 교훈이 더 가치 있다고 판단해서일 것이다.

이 교훈적인 일화에서 예수와 유다의 모델이 동일인인가 하는 점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저 예수의 모델이 될 수도 있고, 유다의 모델이 될 수도 있게 하는 마음, 그 마음이 중요하다.

호감 가는 얼굴을 위해서라면 성형수술 보다 더 효과 있는 방법이 마음 다스림이 아닌가 한다. 우리 모두 마음 잘 다스려 미남 미녀가 되자.

한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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