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교도소)에서 나오면 두부를 먹는(먹이는) 이유

윤홍길, 장마
디딤돌의 고교 문학 교과서 자습서, 윤홍길의 ‘장마’에 대해 설명부분.

아버지는 꼬박 일주일 만에야 풀려 나왔다. 먹을 걸 차입하느라고 그간 읍내를 뻔질나게 들락거렸던 어머니가 대문턱을 막 넘어서는 아버지의 머리 위로 연방 소금을 뿌리면서 눈물을 질금거리고 있었다. 끌려가기 전과는 딴판으로 아버지는 얼굴이 영 말씀이 아니었다. 눈자위는 우묵 꺼지고 그 대신 광대뼈만 눈에 뛰게 솟아 마치 갓 마름질한 옥양목처럼 희푸른 낯빛이 말할 수 없이 초췌해 보였다. 나를 더구나 외면하게 만든 것은 걸음을 옮길 적마다 오른쪽 다리를 절름거리며 짓는 몹시 괴로운 표정이었다. 집에 돌아온 첫 저녁, 아버지는 당시 마을에서는 구하기 힘든 두부를 한꺼번에 세 모나 날것으로 먹어치웠다. 본디 입이 무거운 양반인 줄은 알지만 그날따라 아버지는 더욱 말이 없었다. -윤홍길, 장마 중에서-

윤홍길의 ‘장마’에 나오는 한 구절입니다. 지서에 잡혀가 고초를 겪은 아버지가 풀려나자 어머니가 아버지를 향해 소금을 뿌리는 장면과 함께 두부를 먹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고등학교 문학교과서 자습서(디딤돌)에는 이 부분을 “두부를 날 것으로 먹는 것은 소금을 뿌리는 것과 같이 화를 막기 위한 미신적인 행동이다”라고 설명합니다.

우리에겐 상가에 다녀오거나 궂은일을 당하면 소금을 뿌리는 풍습이 있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봤음직한 일로써 익히 아는 사실이니 이 부분은 그리 토를 달 것이 못됩니다. 그런데 두부를 먹는 것도 화를 막기 위한 행동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맞는 말일까요?

교도소나 구치소에 갔다가 풀려나면 두부를 먹이는 장면은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장마에 아버지가 두부를 먹는 모습에서 액막이용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는 그런 이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두부를 세 모나 날것으로 먹었다는 것으로 보아 배가 고팠을 수도 있겠군요. 액막이용으로 두부를 먹었다면 두부의 모서리부분 그러니까 한쪽 귀퉁이만 먹는 것이 정상입니다. 액막이 두부는 그렇게 먹는 것이니까요.

혹시 ‘콩밥 먹인다’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는지요? 아마 나이가 있다면 그 말뜻을 아실 겁니다. ‘감옥 보낸다’ ‘징역살이를 시킨다’는 뜻을 달리 표현하는 말입니다. 정말 감옥에서 ‘콩밥’을 줘서 그렇게 표현하는 것일까요?

두부는 콩으로 만듭니다. 그러니 ‘콩밥 먹인다’이 말은 ‘두부를 먹인다’는 말로 이해 하셔야합니다. 교도소에서 두부를 주지 않습니다. 두부는 출소할 때 먹는 것이죠.

예전에는 먹는 것이 부실했습니다. 그래서 ‘보릿고개’라는 말도 있었지요. 밖에서도 그럴진대 교도소라면 더하면 더했지 못하진 않을 겁니다. 감옥에서 병사하는 사람들이 많았지요. 고문의 후유증도 있겠지만 영양실조로 몸이 상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안 가봐서 모르겠지만 먹는 것이 바깥보다야 못하겠지요. 막말로 감옥이 휴양지도 아니고 먹을 것이 잘 나온다면 그게 어디 감옥이겠습니까. 먹는 것이 부실하다면 몸이 축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생겨난 풍습이 감옥에서 나온 사람에게 ‘두부를 먹이는’것이었습니다. 두부는 콩으로 만든 영양식품입니다. 콩은 식물성 단백질 덩어리죠. ‘밭에서 나는 쇠고기’라고도 불리는 영양식입니다. 감옥에서 축난 몸을 보완하는 식품으로는 최고의 음식이기도 했습니다. 이제 이해가 되시는지요? 두부는 감옥살이로 몸이 축난 사람에게 주는 영양식이라는 사실을.

두부
저는 오늘 ‘밭에서 나는 소고기’를 먹었습니다.

“왕께서 미음과 술과 ‘두부국’으로 길가는 사람에게 보시(布施)하나, 적은 은혜는 두루 베풀어지지 못합니다. 상벌을 밝혀 악을 징계하고 선을 권장한다면 복을 오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작은 일은 임금의 체통이 아니오니 폐지하소서.”

두부에 관한 기록으로는 최승로의 ‘시무28조’에 등장하는 ‘두부국’이 최초입니다. 시무28조 중 4조에 ‘두부국’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최승로는 신라 6두품 집안에서 태어나 고려의 재상까지 올랐던 사람입니다. 성종의 신임이 두터웠지요. 이 기록으로 보면 우리는 고려시대 이전부터 두부를 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부에 관한 세시풍습을 살펴봐도 정월 대보름날 먹었던 ‘복두부’에 관한 것만 있고, 액막이와 관련된 다른 기록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소금이나 팥죽과 같은 용도가 아닌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소금이나 팥죽은 잡귀와 같은 우환을 쫒아내는 효험이 있다고 믿었거든요.

만약 두부를 관재수와 관련된 액막이용으로 생각했다면 감옥 같은 곳에 끌려가서 (영양실조로)몸이 축나지 말라고 기원하는데서 생겨난 풍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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