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도현의 전원일기(2) 농사는 누가 짓는가?

도시농부 최도현 씨.

요즘 농사짓는데 가장 큰 골칫거리는 멧돼지나 고라니에 의한 피해이다. 새들의 개체 수가 감소하여 허수아비가 사라진지 오래인 들에는 대신 이들 짐승을 막기 위하여 울타리를 설치하는 것이 대세다. 그래도 이들의 육탄공세를 막을 수 없어서 고육지책으로 들깨나 참깨를 심는다.

울타리를 치는 농부와 호시탐탐 엿보는 짐승들 사이의 신경전은 추수 때까지 계속된다. 어쩌다가 울타리 안에 갇혀버린 농작물들은 과잉보호를 받는 것인지 감옥살이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게 자란다.

어느 해에는 콩, 팥, 돔부를 심었는데, 고라니가 먹어버려 거의 수확을 못했다. 이 녀석들은 한번 왔다 가면 그야말로 인정사정없이 먹어치우는지라 허망하기 그지없다. 그 후로는 심지 않게 되었는데 동네 사람들 사정도 대부분 마찬가지다.

부득이 짐승들이 먹지 않는 깨 종류를 심다 보니 여지없이 토양이 황폐해져버린다. 콩과 작물을 심으면 흙이 좋아지는 반면 깨를 심어 거둔 밭은 흙이 딱딱해져 여간 마음이 편치 않다.

식물이 자라기 위해서는 질소, 인, 칼륨의 양분이 필요하고 그중 부족하기 쉬운 것이 질소다. 대기 중의 질소는 80% 가까이나 되지만 식물이 곧바로 이용할 수 없는 형태로 되어있는 까닭이다.

‘번개가 치면 그 해 농사가 풍년이다’라는 말이 있고 이는 틀린 말이 아니다. 번개가 치면서 질소 원자를 떼어냄으로써 식물이 먹을 수 있게 되기 때문에 비의 성분에 질소가 함유되는 것이다. 독일의 노벨화학상 수상자 하버는 질소를 고정시키는 방법을 번개 치는 현상에 착안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콩과식물은 대기 중의 질소를 식물이 이용할 수 있도록 뿌리혹박테리아가 고정한다. 따라서 땅도 좋아진다. 이렇게 콩과식물은 다른 식물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식물이지만 현실에서는 안타깝게도 짐승들의 극성으로 콩과식물 농사를 포기하니 땅이 계속하여 나빠질 수밖에 없다.

콩을 안 심으면 콩과풀이라도 있어서 땅에 질소를 불어넣어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제초제를 사용하여 있는 풀마저도 제거해버리니 땅속의 환경이 오죽하겠는가. 이런 일을 땀까지 흘려가며 집 마당처럼 깨끗이 해놓고는 농사 잘 짓는다고 자화자찬을 하니 될 말인가.

그래도 나는 풀과 함께 농작물을 키웠으니 우리 밭은 조금이나마 나은 편이다. 옆 밭의 주인은 나와는 정반대의 농법을 자랑하고 있다. 장마철에도 풀 한 포기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깔끔하다. 며칠에 한 번씩 살충제와 제초제 뿌리고, 틈틈이 비료 준 까닭인데, 그 결과 비가 오면 우리 밭으로 토사가 많이 떠내려 온다.

그분들은 풀이 무성한 가운데서 일하는 내게 들으라는 듯 지나가며 한 소리 하신다. “풀이 웬수여~”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농작물에게는 사람이 웬수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여름의 어느 날, 꽃 핀 망초를 씨앗을 퍼뜨리기 위해서 남겨두었다고 했더니 그분은 많이도 웃으셨다.

자연농법의 창시자 후쿠오카 마사노부(福岡正信)의 책 ‘농사는 자연이 짓고, 농부는 그 시중을 든다’의 소개를 보았다. 정말로 농부는 시중을 든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농부가 하는 일이라야 고작 풀과 병충해 관리가 전부인데 어찌 보면 농사 방해꾼 역할을 더하지 않았나 싶다. 유익한 토양미생물이 살 수 있는 환경을 파괴하고, 벌과 나비는 못 오게 하고, 토양을 기름지게 하는 풀들은 자라지 못하게 하니 말이다.

이제 ‘농부는 자연에 시중을 든다’는 생각으로 바꿔보자. 아마도 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이 보일 것이다.

많은 농토를 경작하는 사람이 농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면 여유롭고 즐거워진다. 풀을 원수처럼 여기면 심신이 얼마나 고달픈가. 그렇다고 자연친화적인 농법이 낭만적이고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열 평 내외의 작은 텃밭 농사는 괜찮지만 수 백 평 되는 밭을 가꾸려면 힘이 들 때가 많다.

풀 관리를 적절히 해야 하는데, 이른 봄을 제외하고는 무더위나 모기들 때문에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무더위를 피해서 해지는 저녁 무렵에 일을 할라치면 모기가 왜 그리 달려드는지, 가끔씩은 쟁기를 집어던지고 집에 갈 때도 있다.

직장과 현장 일을 겸하다 보니 한낮에 일을 할 때도 있다. 수십 종류의 풀들과 마주하는 시간이다. 다른 사람들은 제초제 뿌리고 편하게 그늘에서 쉬고 있는 시간에 나 홀로 일을 하고 있으면, 오만가지 생각을 하듯이 수많은 풀들과 씨름한다. 어떤 날은 하나의 생각 때문에 괴로울 때도 있다.

내가 풀들과 씨름하게 된 것은 밭을 ‘마음의 밭’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중세의 사막 교부들처럼 노동과 기도를 실천하고 싶었다. 홀로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환경인 셈이다. 밭은 깨끗이 정리를 했어도 마음은 더 뒤죽박죽이 될 수도 있다.

고부간이나 형제간의 갈등,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원망 또는 후회하는 생각이 계속 떠올라 곱씹으면 그날의 ‘마음농사’는 헛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농사를 짓다 보니 신기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고추를 심으면 잎 모양이 비슷한 풀이 옆에 자라는데, 감자를 심어도 마찬가지이다. 왜 그럴까? 의문을 품다가 아마도 풀들의 생존전략이 아닐까 생각했다. 잘 분별하지 못하면 늦게 서야 발견하게 되니 그만큼 더 오래 사는 것이다. 우리네 인생살이도 분별력 있게 하루하루 살아야 함을 배우는 것이다.

농사가 끝난 요즈음, 겨울의 밭을 생각한다. 땅속에서는 어떤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을까? 수많은 미생물들은 지금도 일하고 있을 것이며, 여러 풀들도 움트기를 꿈꾸며 어서 봄이 오기를 기다리지 않을까. ‘농사는 내가 짓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다시금 생각하면서 가만히 웃음을 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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