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전자 이야기〈2〉 슈퍼마켓 아저씨의 죽음

국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동양전자 형님과 함께 친하게 지내던 슈퍼마켓 아저씨가 병원에 입원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저씨가 이전부터 간암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도 그때 알게 되었다. 슈퍼마켓 아저씨의 가족이라고는 슈퍼를 지키는 아주머니와 아들 하나다.

슈퍼마켓 아저씨는 원래 가난한집안 사람인데 아주머니 집은 그런대로 있는 집이라 결혼할 때 아주머니 집안의 반대가 심했으나 아주머니의 고집을 꺾지 못해 결혼할 수 있었다고 한다. 둘이 워낙 열심히 살아서 2층 연립을 마련하였고, 그렇게 무리하다 보니 간암에 걸렸던 모양이었다.

슈퍼마켓 아주머니는 먹을 것이 생기면 우리를 불러 아저씨와 함께 먹으라고 부르곤 하셨다. 그때 우리는 아저씨가 중한 병을 앓고 있는지 꿈에도 몰랐다.

조그마한 사거리에 한쪽은 동양전자 또 한쪽은 슈퍼마켓 그리고 맞은편은 우리 집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셋은 자연스레 자주 어울리게 되었다. 나이는 슈퍼마켓이 제일 많고, 동양전자가 두 번째, 내가 제일 어렸다.

저녁이면 우리 셋이 어울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나 동네사람들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지내고 있었다. 그러다보나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을 주고받고 하는 관계가 형성 되었던 것이다.

슈퍼마켓 아저씨의 성격이 워낙 좋아 동양전자 형님과 나는 아저씨를 놀릴 때가 많았다. 우리는 사이가 좋았지만 말다툼은 끊임이 없었는데 특히 동양전자 형님과는 매일 언쟁을 벌였다. 아저씨는 우리 둘에게 언제나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지만 우리 둘은 언제나 듣는 둥 마는 둥 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슈퍼아저씨가 일을 나가기 시작하였다. 이제 돈 좀 벌어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우리도 먹고 사는데 여유 있는 분이 갑자기 웬 돈타령인가 의아해 했지만 우리로서는 그 속을 알 수 없었다.

그때 아저씨가 선택한 일이 조경이었는데 힘이 힘들었는지 저녁에 술에 취해서 들어오는 날이 많았다. 물론 힘든 일인 만큼 버는 돈도 많은 것 같았다. 슈퍼아저씨 아들은 우리 집이 조용해서 공부하기 좋다고 빈방에 월세로 들어와 고3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들은 순했는데 뒤에 디스크가 생겨 꽤나 고생하기도 했다.

그렇게 아저씨는 한 삼년간을 조경 일을 했고, 아들은 대학에 들어가고, 돈도 제법 모았던 모양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응급차에 실려 간 것이다. 그리고 우리 둘은 아저씨가 간암 말기였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게 되었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 아저씨는 세상을 떠나셨다.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병을 숨긴 아저씨가 못내 서운했다. 동양전자 형님은 더 서운한 눈치였다. 그렇게 아저씨는 세상을 떠나고 아주머니는 슈퍼를 정리하고 어느 직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내가 동네 한의원 하는 선생님에게 말씀드리니 선생님은 “조금 더 살 수 있었는데”라고만 하셨다. 이미 내용을 알고 있었던 모양 이었다.

조금 더 살 수 있었는데…

아저씨는 집에 폐 끼치는 모습으로 더 사느니 마지막으로 자신의 소명을 다 하고 빨리 가는 것을 택한 것 같았다. 그래서 동양전자 형님은 더 속이 상했던 모양이었다. 며칠간 죽어라 술만 마시는 것을 보면.

슈퍼마켓 아저씨와 동양전자 형님 그리고 나, 우리 셋이 여름날 저녁에 커피 시켜놓고서 웃고 떠들던 생각이 지금도 내 눈앞에 선하다. 지난 일이지만 해마다 여름이면 항상 그때 그 저녁의 기억들이 나를 에워싼다. 지금 사는 아파트에는 그런 재미가 없는 곳이라 더 그렇다.

나는 지난 몇 년을 홀로 가신 아저씨를 생각하며 아파트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그 옛날의 추억을 모자 속에 감춘 채,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 속을 걷고 있다.

김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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