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도현의 전원일기(4) 가지치기와 순지르기는 욕심을 버리고

복숭아나무
복숭아나무

농부에게 있어서 겨울은 방학이자 반성과 숙고의 시간이다. 비록 몸은 쉬고 있을지라도 몇 년간 기록한 농사일기 같은 것을 들춰보며 작년 농사를 반추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다짐도 해보는데, 아직 1월이건만 내 마음엔 1년 농사의 계획이 거의 완성되어가고 있다.

오래전 도시에서 살다가 귀향을 하면서 밭에 무엇을 심고 가꿀까 궁리했다. 시시때때로 잘 익은 과일이 원목 식탁에 올라오는 꿈을 꾸었던 터라 여러 종류의 과일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밭 중앙에는 복숭아나무를 열 그루 심었다. 어렸을 때 집에서 복숭아 농사를 지었어도 워낙 비싼 과일이었던 탓에 제대로 먹어보지 못했던 기억 때문이다.

2월이 되면 슬슬 복숭아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시작한다. 아직도 나무를 잘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나무의 기본 수형을 잡고 난 후에는 위쪽이나 아래로 향하는 가지는 잘라주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리고 전체 모양을 살펴보고 알맞게 작업을 한다. 특히 위로 향하는 가지를 잘 못 두면 굵어져서 수형 관리가 어렵게 된다.

가지치기 작업이 마무리될 즈음이면 연분홍 복사꽃이 피기 시작한다. 어디선가 날아든 꿀벌들의 날갯짓 소리, 꽃의 풍광을 보고 있노라면 참 잘 심어놓았다고 스스로 감탄하곤 한다. 그러나 이런 감상도 잠시, 꽃이 지고 나서는 열매를 부지런히 솎아야 한다.

복사꽃은 꽃마다 열매가 맺히는 탓에 몇 날 며칠을 일해도 벅차다. 보통 한 뼘 간격으로 한 개씩 달리게 하는데, 조금이라도 더 먹고 싶은 마음과 병충해 대비용을 둔다고 하다가 많아서 낭패를 보기 쉽다.

사람 욕심은 끝이 없는지라 몇 년 전에 욕심을 부리다가 화를 자초하고 말았다. 열매도 달고 잘 자란 나무 다섯 그루가 장마철에 쓰러져서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열매가 너무 많이 달려 있다 보니 무게를 지탱하지 못한 것이다. 그 후에 다시 새 묘목을 심었지만, 맛이 예전만 못했다.

이처럼 농사를 짓다 보니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운다. 들깨도 적당한 간격으로 심어야 많은 수확을 얻을 수 있고, 상추도 잘 솎아주어야 좋은 것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하늘로 뻗는 가지처럼, 교만, 욕심, 이기심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려는 속성이 있다. 그러므로 나무의 수세를 살피듯 마음을 잘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긴 겨울이 지나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봄이 되면, 봄나물을 캐는 것을 시작으로 농촌의 풍경은 바빠지고 활기를 띤다. 4월부터 종묘상 가게는 그야말로 대목을 맞는다. 수십 가지 모종이 보기 좋게 나오고, 처음 상추를 심어보는 초보 도시농부부터 시작하여 전문 농부까지 사람들로 북적인다. 나는 모종을 살 때는 마치 처음 출조하는 낚시꾼처럼 설렘을 느낀다. 토마토, 가지, 오이, 참외, 호박, 고추, 옥수수, 상추, 치커리, 케일······.

나는 해마다 토마토를 심는 기쁨이 있다. 토마토의 신비로운 향기가 그리워서일까. 아니면 어릴 적에 큰 집 마당 한쪽에 심어진 빨간 토마토 하나를 툭 따서 건네주시던 큰어머니의 손길이 그리워서일까. 토마토를 심어놓고 키우며 맛보는 즐거움이 크다.

밭농사는 풀 관리와 병충해 방제가 주된 일이지만, 그 외에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일이 있는데 바로 순지르기다. 토마토, 가지, 고추, 호박, 참외, 감자, 오이, 수박, 들깨, 콩 등 예외 없이 곁순을 따거나 순을 쳐서 원하는 좋은 열매를 얻는다.

거름기가 많고 병충해가 없는 좋은 환경일지라도 웃자라면 안 되기에 순지르기가 필요하다. 농부의 손과 전지가위는 의사의 수술용 메스와 같다고나 할까. 그중에서 토마토의 곁순 따기는 특별하다. 사람 키만큼 자라고, 각 잎줄기 사이에서 곁순이 나오기 때문에 거의 날마다 해야 하는 일이다.

복숭아나무 가지치기와 마찬가지로 토마토 곁순을 제때에 따주지 않으면 원줄기와 구분이 안 된다. 줄기가 많아서 열매를 많이 맺으면 좋을 것 같지만, 크기도 작고 당도도 떨어지기 때문에 적당히 열리도록 관리하는 게 좋다.

나는 곁순을 딸 때마다 ‘나의 곁가지는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던지곤 한다. 내 삶에서 반드시 해야 할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분하고, 또한 곁길로 가는 인생은 아닌지, 곁가지 같은 생각으로 시간 낭비하는 것은 없는지 질문한다.

밭에서 홀로 일을 하고 있으면 여러 생각을 하게 되는데, 가장 나를 괴롭히며 따라다니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밉고 섭섭한 사람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후회스러웠던 일이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면 자외선에 그을린 얼굴보다 마음은 더 시커멓게 타고 만다.

그러고 보니 우리 인생을 잘 사는 길이 농사짓기와 많이 닮아있다. 공연한 욕심이나 허세를 비롯한 나쁜 것들은 단호하게 가지치기하고 곁순을 따듯이 잘라내야 한다. 그래야 인생이 아름답다. 좋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설 연휴를 보내고 또 새해가 시작되었다. 올해는 밭농사뿐만 아니라 ‘마음 농사’도 잘 지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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