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도의 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 (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 해석

세한도
추사 김정희가 귀양 시절 제자 이상적이 북경에서 귀한 서책을 구해와 유배지까지 찾아와서 갖다준 것에 감명해 그려준 세한도. 추사는 상도에서 임상옥의 조언가로 등장한다.

최인호 작가의 소설 ‘상도’에는 ‘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 이란 의미심장한 말이 나온다. 한동안 그 뜻을 몰라 머리를 싸매고 끙끙댄 적이 있었다. 상도를 ‘한일월드컵’ 전에 읽었으니 지금으로부터 약 15년은 훌쩍 지난 이야기다.

‘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은 조선 후기 상인 임상옥이 ‘가포집(稼圃集)’에 남긴 말이라고 하는데 최인호 작가가 상도에서 과거의 임상옥과 현대의 김기섭 회장을 연결하는 고리로 활용하였다.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

이는 상도에서 제시한 ‘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의 풀이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겨버려도 되겠지만 워낙 현기어린 문구라 제대로 된 뜻을 알고 싶었다. “재물이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라니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인지, 아울러 上과 中의 쓰임새도 수상하다. 해석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데 운을 맞추기 위해서 붙인 글인가.

이러한 답답함을 당시 운영하던 블로그에 올리며 도움을 청했고 많은 분들이 답글을 주셨다. 그러나 주셨던 답글들은 대체로 짐작했던 해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마음 다스림에 관한 좋은 해석들이다. 꿈보다 해몽이라더니 결국 각자가 의미부여하는 수밖에 없단 말인가. 결국 더 이상의 진전 없이 15년이 흘렀다.

그러다 최근 우연히 「상도」에 등장하는 하심은(何心隱)을 소개하면서 예전에 해결하지 못했던 ‘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문제를 다시 만났다. 이번엔 정말 그 뜻을 제대로 알고 싶었기 때문에 여러 자료를 뒤지다가 괜찮은 해석을 하나 찾았다.

실명이 아니라 누구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한문에 조예가 깊을 것으로 짐작되는 그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의 해석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는 말은 오역이라고 하였다.

그는 “해석은 전혀 어렵지 않은데 소설에서 시도한 번역으로 인해서 선입관을 가지고 보게 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소설의 역문을 반복하거나 대략 얼버무리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볼 수 있다”면서 상도에서 나오는 해석의 오류를 이렇게 지적하였다.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와 같이 번역을 하면 당연히 上과 中의 문장성분상의 역할이 애매해질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財와 人을 주어로 해 버린 것에 따른 응분의 결과이다. 원문의 구절은 의미상의 주어가 노출되어 있지 않은데, 바로 이 때문에 눈에 보이는 財와 人을 주어로 삼은 것이다.”

그리고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아야 하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 같아야 한다’로 해석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렇게 하게 되면 원문에는 ‘~해야 한다’는 當爲(Sollen)의미가 전혀 없기 때문에 앞의 것보다 훨씬 더 심한 오역이 된다”면서 이러한 것들을 감안하여 직역을 하면, “(임상옥의 성품은) 재물에 있어서는 공평하기가 물과 같았고, 사람 사이에서는 정직하기가 저울과 같았다”와 같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財上의 해석은 재물상으로, 재물에 있어서, 재물의 측면에서. ‘上’은 우리가 흔히 ‘서류上으로’라고 말할 때와 같은 용도이고, 平을 ‘평등’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면서 “’平等’이라는 것은 원래 불교용어이며 이 용어를 일본이 근대화하면서 빌어와 ‘equality’라는 개념에 대한 번역어로 채택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오역에서 사용된 ‘평등’의 용례는 다분히 ‘재산상의 평등’을 의미하는 근대적의미로 사용된 것인데, 만약 임상옥이 돈을 의롭게 사용했다고 해서 양반과 상민의 신분질서가가 엄연한 조선시대에 근대적인 ‘평등’을 끌어다 번역한다면 대단히 거칠며 시대착오적인 내용이 되기 때문에 ‘공평하다’는 원래의 뜻이 맞는 것 같다.”고 하는데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그리고 ‘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 이 두 구절은 완전한 對句를 이루고 있은데, ‘如’와 ‘似’를 의미상으로 지나치게 구분하려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인다면서, “번역에서 과거형을 택한 것은 이 글이 사람을 평한 글이기 때문”이고, “대개 사람을 평할 때에는 그 사람이 살아 있다고 하더라도 과거에 자기가 본 모습을 묘사하기 때문에 과거형으로 옮기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니까 ‘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은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와 같은 해석이 아니라, “임상옥은 재물에 있어서는 공평하기가 물과 같았고, 사람 사이에서는 정직하기가 저울과 같았다”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딱히 흠잡을 곳이 없는 그의 해석에서 그동안 품고 있었던 의문은 해소 되었지만 왜 섭섭한 마음이 생길까. 안개속의 산세는 무척이나 멋졌는데 안개가 걷히자 볼품없어서 실망한 느낌이다.

한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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