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울려버린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유언이 되어버린 다니엘의 쪽지

나, 다니엘 블레이크

하루를 계획한 대로 마치지 못해 찜찜했다. 하여, 찜찜한 마음을 영화로 풀어야겠다고 작정하고 영화를 골랐다. 이리저리 찾다가 결정한 것이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이다. 영화가 괜찮았다는 평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영국영화이다. 그래서인지 R발음으로 친숙한 미국식 영어와 달리 딱딱한 느낌이 있는데 흡사 독일어를 듣는 듯 어색했지만 귀에는 더 잘 들어온다. 아 그렇다고 오해는 마시라. 나는 자막 애용자다.

찜찜함을 풀려고 했지 울려고 한 것은 아닌데 이 영화가 나를 울린다. 영화를 감상하는 도중 울컥울컥 어떤 덩어리가 목구멍을 뚫고 삐져나오려 했고, 난 그것을 욱~욱~ 신음소리를 내며 억누르느라 혼났다.

이 영화에 진심으로 공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한 며칠쯤 굶어본 사람일 거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영화를 보며 마음 아파하고 다니엘이나 케이티의 처지를 동정할 수는 있겠지만 그들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힘들다. 오죽하면 ‘홀아비 사정 과부가 안다’는 속담이 있을까.

영화의 공간적 배경은 영국의 뉴캐슬. 주인공은 목수였던 다니엘 블레이크와 애 둘을 키우는 싱글 맘(single mom) 케이티다. 다니엘은 심장병으로 일을 할 수 없고, 케이티는 남편과 이혼하고 런던에서 이사 왔다. 실업급여를 신청하는 기관에서 두 사람은 알게 되는데 다니엘은 자신의 형편도 어려우면서 케이티를 도우려 애쓴다.

사회적으로 배려를 받아야하는 이들은 배려는커녕 사고(思考)가 정지된 공무원들의 불친절과 드러나지 않는 냉대에 더욱 고통을 받는다. 이들이 정부의 도움을 받기에는 공무원들이 쌓아둔 벽은 높기만 하다.

생활고에 견디다 못한 두 사람. 다니엘은 집안의 물건을 처분하는데 케이티는 한 술 더 떠 마트에서 물건을 훔치다 걸리기도 하고, 심지어 성매매까지도 시도한다. 며칠을 굶어서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식료품 지원센터에서 몰래 통조림을 까먹는 케이티의 모습을 보며 나는 근원을 알 수 없는 저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덩어리 하나를 삼켜야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나, 다니엘 블레이크, 내가 굶어죽기 전에 항고일 배정을 해라. 그리고 전화기의 거지같은 대기음도 바꿔라.

무사안일주의에 빠져있는 우리나라 공무원은 민원을 넣거나 고함을 질러야 일하는 척한다. 사회적으로 논란을 일으켜야 일처리를 하지, 알아서 해주겠거니 가만있으면 절대 알아서 해주지 않는다. 이런 표현이 억울하면 옆자리 동료를 탓하길. 순하고 착한 사람이 살기 힘든 사회인데 영국 또한 마찬가지인가 보다.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다니엘은 관청의 벽에 낙서를 하고 1인 시위를 하는데 그 덕분에 항고일 배정을 받게 되지만… 너무 늦었다. 다니엘은 관청 화장실에서 심장병으로 사망하고, 어쩌다보니 유언장이 되어버린 다니엘 블레이크의 품속에서 나온 쪽지.

I am not a client, a customer, nor a service user. I am not a shirker, a scrounger, a begger, nor a thief. I am not a National Insurance Number or blip on the screen. I don’t tug the forelock, but look my neighbor in the eye and help him if I can. I don’t accept or seek charity.

My name is Daniel Blake.
I’m a man, not a dog. As such, I demand my rights. I demand you treat me with respect. I, Daniel Blake, am a citizen, nothing more and nothing less.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역시 서비스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아닙니다. 나는 보험번호 숫자나 화면 속 표시도 아닙니다. 난 굽실거리지 않았고, 이웃을 살피고 도울 수 있다면 그들을 도왔습니다. 난 기대거나 자선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내 이름은 다니엘 블레이크.
나는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따라 나는 나의 권리를 요구합니다. 나는 당신들이 나를 존중하기를 바랍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다니엘이 항고일 읽으려고 했었던 내용인데 케이티가 대신 읽었다. 이대목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고 엑기스이다. 그리고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녹을 먹는 공무원들이 이 영화를 많이 봤으면 하는 생각을 해봤다. 여운이 오래가는 좋은 영화다.

한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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