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눈 오는 날 그리고 식혜

눈 오는 날

그날은 눈이 많이 내렸다. 나는 나무와 공장 천막에 쌓이는 눈을 쳐다보며, 얼마 전 세상을 등진 장 집사님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참 좋아했다. 항상 식혜나 다른 먹을거리를 건네며 덕담을 해주곤 했다. 그녀와의 인연은 내 아내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이다. 나도 아내의 권유로 교회에는 갔으나 교회문안으로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누군가 교회는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아는 자만 온다고 했는데, 나는 그 당시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나를 누나처럼 보듬어 준 사람이 장 집사님이다.

그녀는 말도 안 되게 고생을 많이 했다. 남편이 사고로 죽고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에서 대전으로 이사 왔다고 했다. 보험금을 탔지만 집안에서 살림만 했던 그녀에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항상 기도하면서 눈물을 흘린다는 소리를 아내를 통해 듣곤 했다.

“민석 씨, 교회 다니세요, 구원 받으세요” 나는 그 뜻을 지금에서야 조금 이해한다. 그 당시 나는 팔 년을 교회 문 앞에서 개 마냥 아내를 기다리기만 했다.

그녀는 교회예배가 끝나면 조그마한 자신의 미용실로 우리를 데리고 가서 식혜며 커피를 대접했다. 남편 죽고 배운 기술이 미용기술이라는 것이다. 미용실은 그다지 잘 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그녀는 항상 보험금이 어느 정도 있으니 돈은 그리 걱정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세상을 헤쳐 나가야 한다는 것이, 처음에는 중압감으로 마지막에는 고통으로 다가오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 고통 속에서도 그녀는 항상 남편이 이랬으면 저랬으면 하는 마음을 나에게 충고하곤 했다.

나는 그 당시 불한당소리를 들었다. 참지 못하는 성격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런 나의 성격을 그녀는 누님같이 어루만져주는 것이었다. 내가 식혜를 좋아한다고 직접 식혜를 만들어 주기도 하였다. 나는 그런 그녀가 고마우면서도 측은했다.

그녀와 내 아내가 동류 아니 같은 인세의 고난 속에서 동지애 같은 것을 나누고 있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나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난 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교만의 탈을 쓴 것임에야.

어느 날 그녀는 미용실에서 쓰러지고야 말았다. 피로와 마음고생이 오죽 많았을까. 나와 내 아내는 병문안을 자주 갔지만 좋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두 아이만 남겨두고 주님을 찾아 세상과 이별하고 남편의 품으로 떠났다.

눈이 많이 내리는 그날, 나는 그녀를 생각하면서 눈을 보고 있었다. 나는 오늘 사표를 낸다. 더 이상 이 공장을 떠나고 싶은 나를 말리지 못하고 있다. 아내는 눈물을 보이며 말렸지만 내 결심은 이미 굳건하다. 그런데 왜 내리는 눈을 보며 장 집사님의 식혜를 떠올렸을까.

애써 눈물을 참아본다. 내가 사표를 던진 몇 일후, 아내는 혼자서 장 집사님 무덤을 찾아갔다고 나에게 이야기 해주었다. 장 집사님의 아이들은 그녀의 친정에서 데려갔다는 말과 함께.

김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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