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이 떨어졌을 때는 정은궐의 해를 품은 달

정은궐, 해를 품은 달
정은궐의 ‘해를 품은 달’은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많은 사랑을 받았다.

요즘 컨디션이 좋지 않다. 이럴 때면 지나간 책들을 뒤적인다. 그러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책을 골라낸다. 이런 조건에 언제나 부합하는 것은 정은궐의 작품인데, 이번에 손에 집힌 책은 ‘해를 품은 달’이다.

‘해를 품은 달’은 일전에 독후감을 위해 정은궐의 다른 책들을 읽을 때 빠졌었기에 이번에 간택되지 않았나 싶다. 현재 나의 증세가 당이 떨어졌을 때 나타나는 증세와 흡사하니 달달한 사랑이야기도 괜찮을 것 같다.

왕과 무녀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담은 ‘해를 품은 달’. 해품달은 황진이의 상사몽(相思夢)이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相思相见只凭梦 儂访儂时欢访儂
愿使摇摇他夜梦 一时同作路中漨

서로 그리는 심정은 꿈 아니면 만날 수가 없건만,
꿈속에서 내가 임을 찾아 떠나니 임은 나를 찾아왔던가.
바라거니 길고 긴 다른 날의 꿈에는,
오가는 꿈길에 우리 함께 만나지기를.

훤(昍)이라는 이름을 가진 조선시대 왕족은 숙종의 아들 연령군(延齡君)이 있다. 하지만 연령군은 왕위에 오르지 못했으니 그저 이름만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처음 훤이라는 이름을 접하고서 훗날 경종이 되는 윤(昀)과 잠시 혼동을 했는데 아마 윤에겐 장희빈의 그림자가 짙어 선택하기 어려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도 흔한 윤보다야 특이한 훤이 더 낫다.

뭐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 역사로맨스 소설에서 얼마나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 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사실대로만 작품을 쓴다면 그게 역사서지 소설이겠는가. 우려하는 바는 픽션임을 방패로 이상한 사상을 심으려고 하는 작가가 문제일 뿐이다.

내가 우리나라 격동기 산업화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들을 멀리하는 이유는 불온적인 사상을 가진 인물을 희한하게 미화한 작품들이 많아서이다. 근·현대소설 열편 가운데 일곱 여덟은 그러하니 괜히 외국소설이나 역사소설만 읽게 된다. 다행히 글재주가 뛰어난 정은궐의 작품은 그런 쪽으론 깔끔하니 마음이 편하다.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사이에서 사랑이 움텄다. 세자 훤과 양반집 규수 연우는 서로가 대면한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주고받은 서신만으로 서로를 그리워하는 사이가 된다. 연우가 세자빈이 되어 훤과 맺어지는 듯했으나···

이번에 다시 읽어 보니 유난히 눈에 밟히는 인물이 있다. 조역인 제운과 설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대놓고 그리워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제운과 설은 각각 연우와 염을 사랑하지만 신분에서 오는 제약 때문에 그렇게도 하지 못한다. 애초 가슴에 품으면 안 되는 사랑을 하는 제운과 설이 가슴 아프게 읽힌다.

해품달은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많은 사랑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드라마는 볼 기회가 없었으나 원작이 워낙 탄탄하니 히트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기회가 된다면 드라마도 감상해 보고 싶다.

긴 겨울밤 잠만 자지 말고, 읽지 않았다면 ‘해를 품은 달’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한 땀 한 땀 수놓은 듯 써내려간 사랑이야기에 겨울밤이 따뜻해질지도 모른다.

한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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