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날 인생의 여정에서

화목한 가정

나는 오늘도 공구함을 들고 복도를 따라 걷는다. 사람들은 나를 의자 아저씨라 부른다. 하루 종일 이쪽저쪽에서 부르는 대로 가서 무조건 고쳐주고, 못 고치면 공사건으로 이전하는 것이 내 일이다. 그렇지만 웬만한 건 거의 고치니 어느새 일 잘한다고 소문이 났다. 처음부터 내가 여기 일을 잘했던 것은 아니다. 지금은 극복이 된 상태지만 사실 이 일이 나와는 잘 맞지 않았다.

젊은 시절, 최고학부에서 공부를 하며 청운의 불타는 꿈을 가슴에 품고서 내가 무슨 선택을 받은 사람인양 살아오다가 절망이라는 현실의 맛을 보게 되고, 그런 와중에 어렵사리 한 여인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는 절망감에서 빠져나왔다. 그러느라 근 오십 년 동안 변변히 여행 한번 다니질 못했다. 그러다 오십 초반에 또다시 절망의 숲으로 들어가 더 이상 앞을 내다볼 수없는 상황을 초래하고 말았다.

나는 현실이 주는 압박과 육체적·정신적 한계를 이겨내지 못하고 그만 좌초하고 말았다. 절망감에 많은 눈물을 흘리고 나서야 생전 가지도 않는 교회에 갔고, 그곳에서 나는 탑의 불처럼 타올랐다. 그리고 일어섰다. 나에게 사람들이 보내주는 박수와 응원의 소리를 들으며 다시 재기에 성공하였다. 비록 언론매체에 소개될 정도의 성공은 아니지만, 내가 경험했던 절망을 떠올려보면 대단한 성취였음은 분명하다.

이제 나에게는 가정을 원래의 상태로 복구하는 일이 남아있다. 물론 아직까지 육체적 한계와 정신적 한계가 나를 에워싸고 핍박을 하고 있지만 그 정도로 물러설 내가 아니다. 나는 절망감 속에서 그저 생존만 할 수 있다면 어떠한 것이던지 한다는 의지로 신앙을 갖게 되었고, 사람들과 사교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그리고 나의 지난 발자취에 숨어있는 오만과 독선과 편견을 보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야 아내의 마음을 보고 이해하는 눈과 지혜가 생긴 것 같다. 비록 겉으로야 점잖고 인격적인 것처럼 보이겠지만, 아내를 대하는 나의 행동과 미래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아내와 떨어져 있는 시간 속에서 깨우칠 수 있었다.

목사님은 간혹 이런 말을 해주시곤 한다. “민석씨, 저 같으면 진즉에 도망갔어요. 왜냐고요? 민석씨는 완전 불한당 같으니까요” 나는 나의 행동이 얼마나 거칠었는지도 차츰 알게 되었다. 한때 내가 불한당처럼 굴었던 것은 사실이다. 삶의 질곡도 질곡 이지만, 나의 다혈질적인 성격이 만들어낸 부산물인 것이다.

이제 천천히 한 걸음씩 내 가정의 품으로 돌아가고 있다. 부정적이었던 내 행동의 대가를 치루지 않고서는 갈 수 없는 길을 대가를 치러가며 오늘도 나는 걷고 있다.

아내와 근 몇 년을 이별하여 살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순전히 나의 잘못 때문인 것을 알고 있다. 큰아들이 요사이 ‘이제 아버지는 나보다 하수’라는 말을 한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마음에 잔잔한 미소가 번지는 것을 본다. “그래, 나는 너의 하수에 지나지 않아! 그래, 나는 죽음의 문턱에서 죽음과 싸우다가 무릎 꿇고 울부짖었지! 그래, 나는 너의 하수에 지나지 않아”

아가야! 언제부터 나는 자식들을 큰 아가, 작은 아가라고 부른다. 물론 나의 자식들은 다 커서 아기는 아니다. 큰 놈은 군에 갔다 왔고, 작은 놈은 고3이다. 그러나 나에겐 내 가슴에 품고 업어 기른 아가일 뿐이다. 내가 내 아가들에게 선물 할 것은 엄마를 엄마의 자리로 복귀시키는 것. 그러기 위해서 하루라도 빨리 아빠가 용서를 받아야 하는 것이라는 것.

오늘 또 신청이 들어오고 있다. 고쳐달라고, 무너지고 고장 났다고, 이 의자아저씨를 찾는다. 비록 손에 내가 원한 펜 대신 전동드릴을 들고 있지만, 나는 기쁜 마음으로 나사를 돌리며 의자를 새로 단장한다. 인생이란, 외모에서 풍기는 것처럼 외부에서 오는 충만감도 있지만, 비록 보잘 것 없는 기술자로 인생이 끝날지라도 내부에서 시작되는 행복감도 있음을 이제야 느낀다.

지금 밖은 몹시 추워 담배 한 개 피를 피고 들어오는데도 몸이 얼어버릴 정도이다. 나의 아내와 아가는 저 추운 밖에서 생과 싸우고 있겠지. 나는 밖을 보며 다짐한다. 인생항로가 나를 어디로 이끌고 갈지는 모르지만, 항상 나의 가족과 끝없이 함께 할 것이라고. 오늘도 내일도···.

김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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