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펜윅 시리즈(3)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달나라 정복기

약소국 그랜드펜윅의 달나라 정복기

사나이가 칼을 뽑았으면 썩은 무를 베든가 해서 어떻게 하든지 끝장을 봐야 하거늘 어찌 그토록 까맣게 잊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랜드펜윅 시리즈를 모두 소개할 듯이 해놓고 딸랑 두 편만 적었다는 것을 방금 기억해냈다.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월스트리트 공략기

세상에 잊을 것을 잊어야지 제목에 ‘그랜드 펜윅 시리즈’라고 번호까지 매겨놓고선 깜빡 잊고 있었다니 이는 독서가 겸 서평가로서 직무유기다. 우선 꿀밤 한 대 먹이고, (톡~) 늦었지만 남은 두 편을 마저 소개한다. 오늘은 3부에 해당하는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달나라 정복기(원제; The Mouse on the Moon)’이다.

앞선 글에서 말했지만 환기차원에서 다시 말하면 그랜드 펜윅 시리즈는 레너드 위벌리의 작품 발표순서와 국내 출간순서가 다르다. 내용의 연결성 때문인데, 시리즈를 한꺼번에 읽지 않는다면 별반 중요하지 않을 수 있지만 전체를 내리 읽는다면 국내 출간순서대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다.

레너드 위벌리가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달나라 정복기’를 발표했을 때가 1962년인데 이때는 인류가 달에 가보지 못했던 시절이다. 실제 닐 암스트롱이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로 가서 첫 발자국을 찍으며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을 때가 1969년 7월 20일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소설의 배경이 1968년이라는 점이다. 불과 1년 차이다.

버즈 올드린
아폴로 11호에 탑승해서 닐 암스트롱 다음으로 달에 착륙했던 버즈 올드린(Buzz Aldrin)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 그렇지만 너무나 큰 나라 그랜드 펜윅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이기고(1부), 월스트리트를 휩쓸더니(2부), 이제 달나라까지 정복하려 한다. 그 일은 아주 사소한 일에서 비롯되었다.

어느 날 그랜드 펜윅의 군주 글로리아나 대공녀가 잡지를 보다가 한 여자모델이 입고 나온 모피코트에 꽂혀버렸다. 일국의 군주이지만 워낙에 작은 나라라 모피코트를 살 형편이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너무나 갖고 싶은 나머지 공국의 수상이자 자신을 어릴 때부터 보살펴준 마운트조이 백작에게 부탁을 한다.

글로리아 대공녀가 갖고 싶은 모피코트의 가격은 5만 달러. 자신들이 사용하는 파운드로 환산하면 1만 6~7천 파운드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미국 등 서방국가 기준에서 보자면 겨우 비싼 옷 한 벌에 불과한 금액이지만 이는 공국의 한 해 예산과 맞먹는 엄청난 금액이다.

마운트조이 백작은 글로리아 대공녀의 부탁을 거절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대공녀의 한마디에 승낙해버리고 만다.

“아저씨는 세상 누구보다도 원대한 일을 하실 수 있는 분 아닌가요? 그런데 겨우 이까짓 모피코트 하나에 벌벌 떠시니 저로선 놀랍기만 하네요!”

사실 마운트조이 백작은 간혹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질 때가 많다. 다른 나라에서는 호메로스의 시를 단 두 줄도 못 외우는 무식한 친구들이 수십억의 예산을 주무르고 있는데 자신이 고작 하는 일이라곤 ‘국가 방위 및 자주 유지를 위한 군 병력 양성 예산’이라는 명목의 활시위 교체비용 13파운드 2실링 6펜스를 배당하거나, ‘대중교통 및 도로 유지관리 예산’이라는 명목으로 공국 내 유일한 도로의 유지비용으로 31파운드 15실링을 편성하는 등의 일이 고작이기 때문이다.

“나처럼 원대한 정신의 소유자가 이처럼 시시껄렁한 일에나 신경 써야 한다니, 이 얼마나 끔찍하고 비참한 운명이란 말인가!”

차관을 얻어 성 내 최신식 수도시설을 갖추고, 도로도 확장하고 싶었던 마운트조이 백작은 글로리아 대공녀의 부탁을 빌미로 차관도입 문제를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차관을 들여오려고 할 때마다 야당 당수 벤트너의 반대가 심했는데 대공녀를 내세우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감동적 연설로 벤트너를 원하는 대로 요리한 마운트조이 백작은 최신식 수도설비를 하려는 속셈을 숨긴 채 한창 국제적 이슈가 되고 있는 우주개발에 돈을 쓰겠다며 미국에 505만 달러의 차관으로 요청한다.

우주개발과 관련해서 이웃나라를 돕고 있다는 명분이 필요했던 미국은 그랜드 펜윅이 달나라까지 가는 유인우주선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모른척하고 차관이 아니라 자금을 그저 준다. 지원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주개발인데 차마 5백만 달러를 지원했다고 할 수 없으니 5천만 달러로 올려서.

그저 적당히 시늉만 내다가 말 생각이었으나 원래 의도와 달리 너무 큰돈을 받은 그랜드펜윅은 하는 수없이 뚝딱뚝딱 고물로켓을 만들어 달나라로 향하는데···

그랜드 펜윅 시리즈는 모두 풍자가 있어 재미가 있지만 한편으로 유익한 구석도 상당히 많다. 동서 냉전시대 우주개발에 열을 올리던 당시 상황을 엿보고 싶다면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달나라 정복기’가 제격이다. 재미있게 읽기를 바란다.

한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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