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여행기, 지리산에서 삼천포로

지리산
지리산 전경

지금이야 유명한 산뿐만 아니라 어지간한 산이라도 길이 잘되어 있어 안전하게 등산할 수 있지만 제가 젊은 시절에는 사고가 나더라도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았어요. 그때는 산 무서운 줄 모르고 그저 산에 오르면 등산이다 싶어서 무턱대고 산에 올랐는데 그것이 인생이고 낭만이라고 생각했죠.

어느 무더운 여름날, 나와 친구들은 터무니없는 계획을 잡았어요. 지리산으로 가서 뱀사골에서 1박, 노고단에서 2박, 천왕봉에서 3박을 하고 오자는 계획이었죠. 준비물은 먹을거리에 중점을 두고 나머지는 객기로 때우자는 계획이었어요. 마침 지리산에 가본 친구도 있었고요.

그때의 3박4일이 지리산 여행의 끝이었지만 한 번도 그 무모했던 등산을 잊을 수가 없어요. 무모한 등산은 뒤에 설악산에 가는 것으로 한 번 더 이어지지만 젊은 시절의 등산은 그것으로 끝이었죠.

나와 친구들은 지리산처럼 높은 산에 올라본 경험이 없었지만 산이면 다 같은 산이지 하는 생각을 가졌어요. 그저 산에 가면 다 해결 될 줄 알았죠. 그래서 살아있는 암탉, 봄 잠바 하나, 얇은 이불 하나, 텐트 2개에 지도 하나와 기타 군것질 거리를 싸들고 이른 아침에 지리산으로 출발 했어요.

기차 소리에 잠을 자다 깨다하면서 여름날의 정취를 만끽하며 가다보니 어느새 지리산 가까운 역에 도착 했어요. 지리산 기슭에 도착한 우리 7명은 뱀사골에서 암탉을 바비큐해서 먹고 1박한 후에 노고단으로 떠난다는 처음의 계획을 다시 확인했죠.

그러나 지리산은 우리 집 앞산 같지는 않았어요. 처음 걷는 지리산은 끝도 없었죠. 걷다보니 가게가 보이기에 길을 물어볼 겸 들렀어요. 뱀사골을 물으니 한두 시간만 가면 된다고 해서 우리는 그 가게에서 지리산 동동주를 한 사발 들이키고 다시 길을 나섰는데, 이 술이 보통 독한 것이 아니었던지 걷는지 기는지 당최 구분이 안 갔어요.

하여간 어떻게 두어 시간 이상을 걸었는데도 나오라는 뱀사골은 안 나왔어요. 갈증은 심해오는데 물이 없어 혼이 났죠. 갈증을 달래려 가져왔던 오이며 당근은 진즉에 다 먹어버려서 없는데 아무리 근처에서 물을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어요.

심지어 친구 하나는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양파를 생으로 먹고 죽을상을 짓는데, 술은 깨고, 갈증은 심하고 정말 지구가 끝장나는 것 같더라고요. 너무 힘들어서 짐을 줄이려고 가져온 암탉을 숲길에서 풀어주었어요.

그렇게 허위허위 걷는데 앞쪽에서 계곡 물소리가 들렸어요. 이제는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침 해가 지기 시작해서 어둑해 지는데, 우리는 누가 뭐라고 할까봐 서로 여기가 뱀사골이라 했고, 지리산에 온 적이 있다는 경험 있는 친구도 여기가 뱀사골이라고 선언하기에 그곳에서 1박하기로 결정했죠.

1박하기로 결정하고 보니 풀어준 암탉 생각이 간절했어요. 그래도 계곡에서 고기 잡고, 나무를 모아 모닥불을 피워놓고 보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산 같은 산에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날 우리는 저녁 10시쯤에 잠이 들었어요.

아침에 깨어 선녀처럼 계곡 물에 들어가 목욕재계하고 김치반찬에 된장국으로 아침을 해서 먹고 길 떠날 차비를 했어요. 올라오는 등산객에게 물어보니 여기가 뱀사골이 맞고 노고단은 한 4시간 올라가야 한다고 하더군요. 우리는 그 말을 듣고 노고단으로 걸음을 재촉했죠.

지리산에서 등산 지도 하나면 노고단은 문제없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었는데, 우리는 정말 시간낭비 없이 노고단에 올랐어요. 노고단까지 올라오면서 경치를 보니 산이 깊은 것이 우리가 여태 보아왔던 산하고는 완연히 다른 큰 산이어서 괜히 마음이 우쭐하더군요. 이런 큰 산에 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문제는 밤에 일어났어요. 산 정상의 추위가 장난이 아닌 거여요. 노고단에서 2박을 하는데 추위에 떨며 한다는 것은 계획에 없던 일이었어요. 밤새 추위에 시달리다 보니 아침 일출에도 감흥은 고사하고 집 생각과 목욕탕 생각만 나더군요.

우리는 이대로 하산할까 생각하다가 오후 두시까지 천왕봉을 찍고 내려오기로 결정했어요. 아무도 처음 계획대로 천왕봉에서 3박을 하자는 말은 안하더라고요. 아마 1박을 더 할 경우 얼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지 싶어요.

우리는 산 구경은 뒤로하고 천왕봉으로 걸음을 재촉하였죠. 열심히 걸었던 덕분에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점심식사 전에 도착했는데 밑을 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올라오고 있었어요. 그 시원함에 나와 친구들은 적당히 한자리씩 맡아 소변을 보기 시작 했죠. 일종의 성취감의 표현이었죠.

산을 올라오는 사람들을 보니 한 여인이 큰 수박 한통을 들고 올라오는데, 나는 저 수박이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여기까지 들고 오나 싶은 생각에 산속에 풀어준 암탉 생각이 또 나더군요.

천왕봉에서 기차역으로 내려오니 시간도 있고 해서 기차역에서 국수에 밥을 말아 김치에 먹었어요. 꿀맛이 따로 없더군요. 그런데 이 기차역은 우리가 내렸던 기차역이 아니더라고요. 그래도 집까지는 갈 수 있어서 기차표를 사려는데 난데없이 삼천포로 가는 기차가 눈에 뜨였어요.

우리는 어차피 사용하지 않은 일박이 있는데다 여기 위치는 모르지만 산에 온 김에 삼천포로 가서 바다나 즐기자 생각하고 우리는 삼천포로 빠지게 되었죠.

삼천포에 도착한 우리 7명은 여름 해변을 좀 즐기다가 어젯밤 산에서 개처럼 떨던 일과 수박 든 여인과 지리산을 뛰어다닐 암탉을 생각하면서 바닷소리에 잠이 들었죠.

그날 삼천포 바다의 여름밤은 ‘갈 데 없으면 삼천포로 빠진다’라는 말과 산중에서 떨다가 친구들끼리 꼬옥 안고 잠을 청하던 우리와 함께 그렇게 깊어져만 가고 있었어요.

김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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