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는 자도 있어야 하고 줍는 자도 있어야 한다.

최명길의 초상과 김상헌 유묵
최명길의 초상(좌)와 김상헌의 유묵(우)

不可有 崔鳴吉 不可無 崔鳴吉
있어서도 안 되는 최명길, 없어서도 안 되는 최명길

이는 서낭당 귀신이 최명길(1586~1647)에게 했다는 말이다. 조선 인조 때 대신이었던 최명길이 젊었을 때 문경새재에서 서낭당 귀신을 만나 죽을 뻔 했으나 서낭당 귀신이 살려주면서 했다는 이 말은 전설로 전해오고 있다.

원전에서 서낭당 귀신은 최명길을 향해 ‘나라에 있어서도 안 되는 그대, 없어서도 안 되는 그대’라고 했다고 하는데 무슨 사연이 있을까?

우리 역사에서 큰 전란이라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꼽을 수 있다. 임진왜란은 선조 때 왜가 침략하여 겪었던 전쟁으로 정유재란과 합쳐 7년간 있었던 전쟁이고, 병자호란은 인조 때 청이 침략했던 2달간의 전쟁을 이르는 말이다. 이 두 전란은 7년과 2달로 기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가 당한 피해는 2달간 겪었던 병자호란이 압도적으로 많다.

청의 거센 공격을 견디지 못한 인조는 결국 주화파(主和派)의 주장대로 항복하는데, 항복문서를 작성한 사람이 바로 이조판서 최명길이다.

‘조선국왕은 절하고 대청국 관온인성 황제께 글을 올립니다’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이 글을 보고, 예조판서 김상헌(1570~1652)은 통곡하면서 항복문서를 빼앗아 찢어버린다. 그러자 최명길은 흩어진 종이쪽을 주워 모아 풀로 붙인다.

김상헌은 전쟁을 하여 옥쇄하는 한이 있더라도 기개를 살리자고 주장했던 척화파(斥和派)로 항복하여 국토를 보존하자는 최명길과는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다. 이 둘의 방법은 달랐으나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은 같았다. 이를 아는 사람들은 탄식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裂製之者不可無요 拾之者不可無라
찢는 자도 있어야 하고 줍는 자도 있어야 한다.

김상헌은 청으로 끌려가며 모두가 잘 아는 ‘가노라 삼각산아’로 시작되는 시조를 한 수 남겼는데 ‘청구영언’과 ‘악학습령’에 수록되어 있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청으로 끌려간 김상헌은 모진 고초를 겪는데 뒤에 최명길 또한 명과 내통했다는 혐의로 청으로 끌려와 같은 감옥에 갇힌다. 이 둘은 머나먼 심양의 감옥에서 나라를 생각하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는 부둥켜 앉고 울었으니, 인조에게는 「不可無 崔鳴吉 不可無 金尙憲」 이 아니었을까?

한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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