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상식] 장시호의 법정구속으로 본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

안민석과 장시호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대면한 안민석(좌)과 증인으로 출석한 장시호. 장시호는 이 때 안민석에게 “뵙고 싶었습니다”라는 말을 하여 화제를 모았다.

지난 6일, 최순시리 조카이자 삼성을 협박해 삥을 뜯고 자금을 횡령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던 장시호가 선고일 법원에 출석했다가 1년 6개월의 검찰 구형에서 1년을 보탠 2년 6개월 선고를 받고 법정구속 됐다.

장시호는 “머리가 하얘져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남겼다고 하는데 애당초 장시호의 머릿속에 ‘구속’이란 것은 없었다는 것이 밝혀진 셈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인데 머리가 하얘졌다는 말로써 장시호의 기대감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된다. 견디기 힘든 일이면 모르고는 하더라도 알고는 못하는 법이다. 더욱이 장시호는 짧게나마 감방의 맛을 봤으니 당분간 정신없지 싶다. 장시호로 하여금 구속만큼은 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한 근원은 무엇일까?

존 그리샴의 작품을 보면 검사가 범죄자에게 형량을 거래하는 대목이 많이 나온다. 검찰이 더 나쁜 놈을 잡기위하여 덜 나쁜 놈을 이용하는 것인데, 공범관계였던 덜 나쁜 놈이 더 나쁜 놈을 잡을 수 있도록 증언을 해주면 검찰이 덜 나쁜 놈을 기소를 하지 않거나 기소를 하더라도 적은 형량을 구형하겠다고 제안하는 장면들이다.

또 진범이 분명한데 결정적인 증거를 수집하기 어려울 때도 검찰은 범인에게 형량거래를 시도한다. 범인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면 형량이 낮은 다른 죄목으로 기소를 하겠다고 제안하는 것이다.

이렇게 외국 범죄소설이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검사가 형량을 가지고 피고인과 거래하는 것을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이라고 한다. 플리바게닝은 애원·간청이라는 뜻을 가진 플리(plea)와 합의·흥정이란 뜻을 가진 바게닝(bargaining)의 합성어로 피의자가 혐의를 인정하는 조건으로 검찰이 가벼운 범죄로 기소하거나 형량을 낮춰 주는 제도를 이르는 말이다.

플리바게닝을 ‘유죄협상제도’ 또는 ‘사전형량조정제도’라고도 하는데 미국은 플리바게닝을 적극 활용하는 국가에 해당한다. 그 때문인지 6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미국의 제도에 더 익숙한 재미교포 김경준은 BBK 주가조작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할 때 검찰에 플리바게닝을 시도했다가 망신당한 일이 있었다. 우리나라엔 그런 제도가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탓이다.

미국이나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플리바게닝을 적극적 내지 부분적으로 수용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공식적으로는 플리바게닝 제도가 없다. 다만 경찰이나 검찰이 피의자에게 “너 불면 봐 줄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풍겨 넓은 의미로는 활용하고 있는 듯하다.

고작해야 조사 혹은 수사를 받을 때 편의를 봐주는 것이 대부분이겠으나 안상영(安相英) 전 부산시장의 경우처럼 검찰 수사를 받던 중 구치소에서 목을 매 자살한 사건도 있었고 보면 피의자의 입장에서는 그것만으로도 큰 혜택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경우 검사만이 공소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소독점주의(起訴獨占主義)’와 검사의 재량으로 기소·불기소를 결정하는 ‘기소편의주의(起訴便宜主義)’를 채택하고 있다. 이는 검사가 피의자를 불기소 하는 방법 또는 재판에서 3년 이하의 단기형을 구형함으로써 집행유예로 구속을 면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제안하는 방법으로 플리바게닝을 시도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시호가 ‘특검 복덩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수사에 협조적이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검찰은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집행유예가 가능한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했다. 암묵적인지 말이 오갔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실질적으로 플리바게닝이 있었던 것으로 봐도 무방하고, 장시호는 이에 잔뜩 기대를 걸었던 모양이다.

구형이란 검찰의 요구이고 선고는 법원의 답변이다. 검찰이 1년6개월을 요구했더니 법원은 검찰의 요구가 너무 적다며 2년 6개월에 법정구속으로 답변했다.

검찰이 하는 요구에 너무 과하다며 깎는 경우는 있어도 약하다고 보태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인데 앞으로 유사 플리바게닝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여태 살아 오면서 유사(類似)란 접두사가 붙어 좋은 거 하나도 못 봤다.

한덕구
Copyright 덕구일보 All rights reserved.
덕구일보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의 보호를 받습니다. 출처를 밝히고 링크하는 조건으로 기사의 일부를 이용할 수 있으나, 무단전재 및 각색 후 (재)배포는 금합니다. 아래 공유버튼을 이용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