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에 물이 반이나 남아 있다, 더글라스 케네디 – 더 잡(The Job)

더글라스 케네디 - 더 잡(The Job)

살랑살랑 찬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에 어울리는 책이라며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픽처(big picture)’를 읽어보라고 권한 바 있다. 자칫 건조해지기 쉬운 계절에 마음마저 그럴까봐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책을 추천한 것이었지만 오늘처럼 살랑살랑 따뜻한 봄바람이 불 때는 재미와 더불어 ‘생각거리’를 더해주는 ‘더 잡’을 읽어봄이 어떨까 싶다.

이 책 역시 도서출판 ‘밝은세상’에서 펴낸 더글라스 케네디 작품이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작품들은 별로 어렵지 않게 술술 잘 읽히면서 무엇보다 읽는 재미가 있어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다. 역시 소설책은 읽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혹시 먼저 읽어본 사람이 “‘더 잡’에 무슨 생각거리가 있나?”라고 항의라도 할까봐 미리 변명을 하는데, 내가 말한 생각거리란 자연현상에 관한 것이거나 철학적 사유 혹은 문학적 표현과 같은 고차원적인 것이 아니라 그저 ‘먹고 사는 문제’ 내지 ‘성공하고 싶다’와 같은 1차원적인 단순한 것으로 한번쯤 “나는 잘 살고 있는가?”하는 고민을 던져준다는 뜻이다.

‘다시는 경제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빠지지 말자!’

네드 앨런은 고객으로부터 ‘좋아요’라는 말을 끌어내어야 하는 세일즈맨이다. 행여 고객의 입에서 ‘싫어요’라는 말이 나올까 두려운 그는 ‘다시는 경제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빠지지 말자’는 결심을 새해 아침에 했다. 간단한 문구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참 무겁고도 슬픈 문장으로 읽혔다.

“레스토랑, 술집, 새 옷, 책, 영화 등을 끊으면(다시 말해 아파트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한 달에 2천6백76달러로 살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 나왔다. 그 경우 1년에 3만2천1백12 달러가 필요했다. 거기에 세금을 덧붙이면 1년에 5만5천 달러 이상을 벌어야 했다. 5만5천 달러도 아내와 내가 절반씩 부담한다는 전제 아래 나온 금액이었다. 뉴욕에서 부부가 살아가려면 1년에 최소한 10만 달러가 필요했다.”

모종의 음모에 휘말려 실직을 하고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 위하여 구직활동을 할 때 생활비를 계산해보는 장면이다. 계산기를 누르는 네드의 마음이 전달되는 듯 하다.

세일즈는 대단한 결심 없이는 성공하기 어려운 분야이다. 그렇지만 기회 역시 공평하게 제공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시골 출신에다가 3류 대학을 졸업한 이력을 가진 네드 앨런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서 세일즈에 정열을 불사른다.

뉴욕에서 텔레마케터로 일을 하던 그는 타고난 감각과 성실성이 고객의 눈에 뜨여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컴퓨터 잡지회사로 자리를 옮기게 되고 마침내 미국 동북부지역 광고지국장이 된다. 연봉 6만 달러에 고액의 보너스를 받던 그는 모종의 음모에 휩쓸리게 되고 회사에서 쫓겨나는데······

이하 이야기의 줄거리는 덕구일보 서평을 봐왔던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인터넷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도록 하고, 여기서는 다른 시선으로 ‘더 잡’을 보자.

어느 정도의 나이만 되면 세일즈맨들이 얼마나 고단한 삶을 사는지 정도는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그들의 책상 하나하나에 눈물겨운 사연들이 박혀 있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다. 책에도 살기위해 일을 해야 하는 몇몇이 등장한다.

숫자로 나열되는 돈. 약간이라도 높은 숫자들을 위해 청춘을 불사르는 것이 대다수의 삶이 아닐까? 이 책에는 유난히 숫자가 많이 나온다. 뭐 얼마 뭐 얼마······.

이 책을 읽는 내내 한 푼의 돈이라도 더 벌려고 노력하는 아빠들, 직장 여성들의 삶이 그려졌다.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하여 노력하는 비즈니스맨, 자동차나 보험을 파는 세일즈맨, 손님을 찾아 도로를 헤매는 택시운전사······

아마도 이 책을 읽으면 좀 더 계획성 있게 세상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싶다. 스토리가 주는 재미만 추구하는 독자라면 “재미있군”하고 그냥 넘겨버릴 테지만.

혹시 그대 이반 돌린스키처럼 “‘컵에 물이 반이나 있네’ 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컵에 물이 반밖에 없네’를 넘어 ‘이 컵의 물이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물이 아닐까?’”하고 걱정하는 타입인가?

봄이 끝나고 있다. 걱정 때문에 아직 제자리에서 머뭇거리고 있다면 네드처럼 가슴을 펴고 세상 속으로 뛰어들자.

한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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