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로 칼비노의 반쪼가리 자작(Il visconte dimezzato)

반쪼가리 자작

‘공후백자남’으로 외우기도 하는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 이들 서양의 다섯 귀족 작위 가운데 ‘자작’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을 읽었다. 이탈리아 작가 이탈로 칼비노의 ‘반쪼가리 자작’이다. 도서출판 민음사에서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한 작품들 가운데 241번 작품으로 번역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탈리아어 통번역학과 이현경 교수가 했다.

드라큘라 백작, 몬테크리스토 백작 등 백작이 나오는 작품은 제법 있었지만 자작이 주인공인 작품은 이번 ‘반쪼가리 자작’이 처음이다. 워낙 시답잖은 서평만 올린다고 생각해서인지 지음(知音)이 “문학적으로 수준이 있는 책을 읽어보라”하며 선물한 책이다.

그 뜻 높이 받들어 121쪽짜리 책을 아껴 읽느라 삼일이나 걸렸다. 그리고 독후감을 써야겠기에 다시 이틀을 더 투입하여 정독하였다. 그렇게 총 오일에 걸쳐 읽었던 책이 ‘반쪼가리 자작’이다.

책을 읽을 때 이렇게 공들이는 스타일이 아닌데 선물 받은 책이다 보니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글자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 애를 썼더니 영화를 감상하듯 내용이 머릿속에서 영상으로 만들어져 플레이 되는 것과 같은 착각이 들었다.

‘반쪼가리 자작’은 17세기 투르크(터키)와의 전쟁에 참가했던 테랄바의 메다르도 자작 이야기다.

『메다르도는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젊은이였다. 그는 대포를 쏠 줄도 모르면서 무모하게 투르크인의 대포에 뛰어들어 몸이 산산조각 나고 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 살아 있는 자작의 반쪽을 야전병원 의사들이 이리저리 꿰매어 자작은 반쪽짜리 인간으로 고향에 돌아온다.

하지만 이 반쪽은 자작의 악한 부분만이 남아 있는 ‘악한’반쪽으로, 온갖 악행을 저질러 그 고장 사람들을 두려움과 공포에 떨게 한다. 그가 우연히 파멜라라는 소녀를 사랑하게 되어 구애를 시작할 무렵, 자작의 ‘선한’반쪽이 마을로 돌아와 사람들에게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선행을 베푼다. 그 역시 파멜라를 사랑하게 된다.

이제 마을 사람들은 극도의 선과 악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한다. 극단적인 ‘악’처럼 극단적인 ‘선’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기는 마찬가지다. 한편 두 반쪽 모두에게 구애를 받던 파멜라는 두 반쪽 모두에게 결혼을 약속한다. 그동안 한번도 정면으로 대면한 적이 없던 두 반쪽이 드디어 결혼식장에서 만나면서 이야기는 절정에 도달한다.』 -125쪽-

출판사에서 친절하게도 책의 뒤쪽에 ‘작품해설’이라는 제목으로 옮긴이의 글을 수록했는데 내용 중 작품의 줄거리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읽어보니 내가 하려고 했던 말과 거의 다를 것이 없어 그냥 옮긴이의 말을 그대로 옮겼다. 옮긴이가 정리한 줄거리가 내가 쓰려고 했던 줄거리다.

이 작품은 판타지적인 요소가 있어 판타지소설이라고 불러야겠지만 그것은 영어로 표기할 때나 ‘Fantasy literature’라고 해서 판타지라는 말이 들어가지 우리말로는 좀 고상하게 ‘환상문학’이라고 표현한다. 판타지를 환상으로 바꾸고 소설도 문학으로 대치하는 것이다. 그래야 좀 있어 보이니까. 일반적으로 판타지소설과 환상문학은 몇 가지 점에서 다르지만 내가 문학 비평가는 아니니 그 부분은 생략하고 ‘반쪼가리 자작’을 들여다보자.

나쁜 반쪽이 -마을 사람들은 먼저 돌아온 오른쪽 반쪽자작을 그렇게 부르면서 반대로 뒤에 돌아온 선한 쪽인 왼쪽 자작을 ‘착한 반쪽’이라고 불렀다.- 조카이자 이 작품의 화자인 외조카에게 건네는 말이 있다.

(흰색 낙지를 반쪽을 내고는) “그렇게 해서 모든 사람들이 둔감해서 모르고 있는 자신들의 완전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야. 나는 완전해. 그리고 내게는 모든 것들이 공기처럼 자연스럽고 막연하고 어리석어 보여. 나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다고 믿었는데 그건 껍질에 지나지 않았어. 우연히 네가 반쪽이 된다면 나는 너를 축하하겠다.

얘야, 넌 온전한 두뇌들이 아는 일반적인 지식 외의 사실들을 알게 될 거야. 너는 너 자신과 세계의 반쪽을 잃어버리겠지만 나머지 반쪽은 더욱 깊고 값어치 있는 수천 가지 모습이 될 수 있지. 그리고 너는 모든 것은 반쪽으로 만들고 너의 이미지에 맞춰 파괴해 버리고 싶을 거야. 아름다움과 지혜와 정당성은 바로 조각난 것들 속에만 있으니까.”라고 말한다. -60쪽-

악한 반쪽이 한 말이라고 하여 그냥 흘려버리기엔 그 내용이 너무 의미심장하여 몇 번이나 이 대목을 음미해보았다. 한쪽의 시각으로 다른 쪽을 바라보면 참으로 답답하고 어리석어 보일 것이다. 다소 어리석은 비유이지만 진보주의자들이 보수주의자들을 바라볼 때의 시각이 그렇지 않을까?

마찬가지로 착한반쪽 역시 의미심장한 발언을 한다. 착한 반쪽이 나쁜 반쪽을 동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파멜라는 착한 반쪽에게 “당신은 너무 허약한 것 같군요. 온갖 나쁜 짓이란 짓은 다 저지르는 당신의 사악한 반쪽에 대해 분노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동정하는 것 같아 보이는데요.”라고 말하자 착한 반쪽은,

“어떻게 그렇지 않을 수 있겠어? 인간이 반쪽이 된다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알거든. 그를 동정하지 않을 수 없어.”라며

“세상 모든 사람들과 사물을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야. 사람이든 사물이든 각각 그들 나름대로 불완전하기 때문이지. 내가 성한 사람이었을 때 난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귀머거리처럼 움직였고 도처에 흩어진 고통과 상처들을 느낄 수 없었어. 성한 사람들이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도처에 있지. 반쪼가리가 되었거나 뿌리가 뽑힌 존재는 나만이 아니야. 모든 사람들이 악으로 고통 받는 걸 알게 될 거야. 그리고 그들을 치료하면서 너 자신도 치료할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한다. -88쪽-

이 말은 절대 ‘선’이나 할 수 있는 말인데 흡사 갈릴리 바닷가에서 예수가 “회개하시오 하늘나라가 다가왔습니다.”하고 외치던 모습이 떠오른다. 알다시피 예수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치던 선한 존재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를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세상에 많다.

예수는 뒤에 베드로라고 불리며 예수의 수제자가 되는 어부 시몬에게서 “술 맛 떨어지니 이제 그만 좀 하라”며 핀잔을 듣기도 했었다.

『그러나 외삼촌(착한 반쪽)의 목표는 조금 더 먼 곳에 있었다. 그는 문둥병 환자들의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치료하려고 했다. 그래서 그는 항상 문둥이들 틈에 섞여서 도덕적인 행동을 했고, 가까이에서 그들의 일을 함께 했고, 그들의 부도덕한 행동에 분개했고, 그들에게 설교했다. 문둥병 환자들은 그의 존재를 견딜 수가 없었다. 버섯 들판의 행복하고 방탕한 시절은 끝나 버렸다. 한쪽 다리로 지탱하고 서 있는 이 인물, 검은색 옷을 입고 격식과 지각을 갖춘 이 야윈 인물 때문에···(중략)

“악한 반쪽보다 착한 반쪽이 더 나빠.”
버섯 들판에서는 이런 말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대포 포탄이 그를 두쪼가리로 만든 것이 천만 다행이지 뭐야. 자작이 만약 세 조각이 났다면 우리는 무슨 일을 겪었을지 알게 뭐람.”모두들 이렇게 말했다.(이하 생략)』 -108~109쪽-

작가 이탈로 칼비노는 메다르도 자작을 동화적 기법으로 반으로 쪼개어 악한 반쪽과 선한 반쪽으로 나누고 이들 반쪼가리의 무시무시한 폭정과 지나친 선행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묘사하면서 반쪽은 메다르도 자작뿐이 아님을 이야기한다.

의사의 본분을 잊어버리고 탐구에만 몰두하는 의사 트렐로, 자신이 만드는 도구들이 살인에 사용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만드는 피에트로키오, 하루하루를 방탕하게 보내는 문둥이들, 종교 윤리만 강조하는 위그노들, 이들 모두가 반쪽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겠지만 ‘반쪼가리 자작’은 엄청나게 감동적이라든지 재미가 있지는 않다. 딱 제목만큼의 문학성만 있다. 아마 작품의 내용에 공감을 하지 못한 이유는 너무 늦은 시기에 이 책을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이 발표되었던 1952년은 아니더라도 70년대나 80년대에 읽었으면 지금과는 평가가 다르지 않았을까 싶다.

선과 악에 대한 가치관 등 세상이 그만큼 많이 바뀌었다. ‘흥부와 놀부’의 놀부나 ‘아기공룡 둘리’의 고길동에 대한 새로운 평가는 이를 잘 뒷받침 한다. 세상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요즘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게 느낀다. 선이 악이 되고 악이 선이 되고 세상은 돌고 돈다.

한덕구
Copyright 덕구일보 All rights reserved.
덕구일보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의 보호를 받습니다. 출처를 밝히고 링크하는 조건으로 기사의 일부를 이용할 수 있으나, 무단전재 및 각색 후 (재)배포는 금합니다. 아래 공유버튼을 이용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