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분의 1과 더치페이에 대한 소고(小考)

더치페이
우리나라는 한 사람이 계산을 하는 아름다운 문화가 있다.

지인인 송(宋)은 사람 좋아하고 양주를 좋아하는 풍류남이다. 한때 송과 어울리며 여러 차례 술자리를 가졌는데 이게 찝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보통 3~4명이 어울려 식사를 하고나면 노래방이나 고급 술집으로 1, 2차를 가는 것은 기본이고, 간혹 3차까지 가는데-나는 주로 1차만 참석했지만- 1차에서 이리저리 지출하는 비용이 평균 30만원은 넘게 나온다. 아마 2~3차는 더 나올 것이다.

이런 저녁 행사는 대개 송이 밥이나 같이 먹자고 청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송은 자신이 불러서인지 밥값은 깔끔하게 내는데 1~2차에서 나오는 비용은 어김없이 n분의 1로 공평하게(?) 내자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반대한다는 것은 판을 깨자는 것과 같아서 다들 그러자고 할 수밖에 없다.

송이 자신의 카드로 결제를 하고는 참석한 사람에게 n분의 1이면 얼마라고 알려준다. 그러면 참석자들은 다음날 송의 계좌에 송금하는 것으로 전날의 행사를 마무리한다.

밥 먹은 죄(?)가 있다 보니 1차부터 빠지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이게 영 찝찝구리하다. 난 양주 체질이 아니어서 흥을 깨지 않으려 맥주 몇 잔 마시고  탬버린을 치는 것으로 놀이에 참여하는데 탬버린 몇 번 쳤다고 n분의 1이라니 이건 아니다 싶다. 내가 춤추는 탬버린도 아니고.

물론 억울한 마음에 동석자들이 블루스를 출 때 몰래 감정 잡고 노래 두어 곡 부르기도 했지만 맘이 그래서인지 감정도 제대로 안 잡힌다. 봉사료를 받아야 할 판에 봉사료는 고사하고 n분의 1이라니.

정말 그럴 리 없지만 송이 술 마시고 싶을 때 저녁 먹자고 우리를 부르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봤다. 물론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하도 억울하니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n분의 1이 정말 공평한 계산법일까?

n분의 1이 계산법으로만 보면 공평하다. 전체를 똑같이 나누어 부담하는 것이니 얼핏 공평해 보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정말 공평하다면 억울한 느낌을 가지는 사람이 없어야 정상인데 그렇지 않으니 문제다.

평등과 공평
평등과 공평의 차이를 설명한 유명한 일러스트인데 n분의 1과 더치페이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으로 적용해보았다. 평등하게 같은 높이의 받침대를 받은 아이는 어떤 마음일까?

n분의 1이 외국에서 수입한 문화라면, 우리나라는 무리의 좌장(座長) 혹은 주장(主掌)격인 사람이 계산하는 문화가 일반적이다. 요즘 도시에서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사라지고 있는 풍습인데 이 아름다운 풍습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아직 있다.

그리고 n분의 1과 함께 네덜란드에서 들여온 더치페이라는 문화가 있다. 사실 더치페이는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것이 있었기 때문에 수입할 필요가 없는 문화였다. 다들 들어봤을 대동법이 바로 그것이다.

“땅 열 마지기 가진 이에게 쌀 열 섬을 받고, 땅 한 마지기 가진 이에게 쌀 한 섬을 받겠다는 데 이게 차별이오?”

영화 광해에서, 대동법(大同法)을 즉각 실시하라는 분부에 신하들이 “전하, 지주들의 피해가 이루 말할 수 없사옵니다. 그들 또한 백성이온데 어찌 차별을 두겠나이까?”라며 불가함을 아뢰자 광해가 어이없어 하며 한 말이다.

대동법은 지방의 특산물로 바치던 공물을 쌀로 통일하여 토지의 결수에 따라 1결당 12두씩 부과한 세금 제도이다.

많이 가진 사람은 많이 내고 적게 가진 사람은 적게 내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인데도 토지를 많이 가진 양반 지주들은 부담이 급증할 것을 우려하여 극렬하게 반대하였고, 그 때문에 본격적으로 시행하는 데는 100년이나 걸렸다.

하여간 이 대동법이라는 것이 가만 보면 더치페이와 별반 차이가 없다. ‘많이 가진 사람이 많이 내고, 적게 가진 사람이 적게 내는 것’과 ‘많이 먹은 사람이 많이 내고, 적게 먹은 사람이 적게 내는 것’, 그러니까 자신이 먹은 만큼만 내는 것이니까.

네덜란드에서 더치페이가 들어왔을 때 처음엔 n분의 1보다 더 환영받았던 계산법이었다. 그러나 더치페이는 계산법이 복잡한데다 신용카드로 결제할 경우 더 복잡해서 전국적으로 퍼지지는 못하고 대안으로 나온 것이 ‘각자 내기’이다. 그런데 이건 ‘함께’라는 느낌이 그리 들지 않는다.

그저 탬버린 만진 값하고 맥주 두어 잔 값만 낼 수 있었다면 송과의 아름다운 인연이 더 오래 지속되었을 것인데, 꼬박꼬박 한 달에 사오십만 원씩 지출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한 번 두 번 피했더니 지금은 인연이 끊어지고 말았다. 오호통제라, 돈이 웬수로구나!

결론을 내릴 때가 되었다. 나의 결론은 n분의 1은 평등한 계산법이지 공평한 계산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밥 먹고 술 마실 때도 평등해야 하나? 공평하면 되지.

n분의 1이란 그저 먹성이 비슷하고 체급이 빵까빵까한 사람들끼리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 사료되므로 급수가 차이 나는 사람끼리는 피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고로, 나는 우리나라 고유의 미풍양속대로 한 사람이 쏘든지 아님 대동법… 아니 더치페이가 더 낫다고 주장한다. 굳이 나눠내야 하는 거면 n분의 1 보다야 더치페이가 합리적이지, 암만!

한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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