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를 죽였지?” 베르나르 베르베르 – 죽음, 흥미로운 주제지만 결말이 아쉬워

베르나르 베르베르 - 죽음
2019년 5월 출간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죽음.

근본적으로 어느 누구도 진심으로 자기 자신의 죽음을 믿지 않는다. 우리는 누구나 무의식 속에서 자기 자신의 불멸을 확신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간 ‘죽음’을 읽었다. 읽고 난 뒤의 느낌을 압축해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죽음’이 수작은 아닐지언정 서점에 깔린 다른 책들에 비하면 그리 졸작이라 할 수 없는데, 그의 데뷔작 ‘개미’에 비교하니 한참 모자란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러니까 ‘아쉽다’는 것은 개미와 비교한 상대평가인 셈이고, 여기에는 한국인이 사랑하고 한국을 사랑한다는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에 대한 기대감도 일정 부분 반영되어 있다.

개인적인 판단이겠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들은 갈수록 질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발전해도 시원찮을 판국에 뒷걸음질이라니······. 그나마 ‘죽음’은 이전 작품이었던 ‘신’에 비해 나은 것 같아 다행이다.

〈누가 나를 죽였지?〉

이야기의 시작은 이 한 문장이고, 이 한 문장이 챕터 1의 전부이다. 시선을 끌기 위함이겠지만 텅 빈 여백이 아깝게 느껴졌다. 꼭 이렇게 쪽수를 늘려야 하나?

이야기는 살해당해 죽은 주인공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이런 시작은 판타지 장르에서는 흔하지만 일반 소설에서는 독특한 시도이다.

2권으로 출간된 죽음은 베르베르 특유의 구성, 그러니까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내용이 챕터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전체 93챕터 가운데 약 40챕터 정도는 삽입한 것 같다. 스토리 진행과는 관련 없는 부분이 절반이면 한 권짜리 책을 억지로 늘려 두 권으로 만든 것이라 할 수 있다.

문장 하나가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나, 스토리와 관련 없는 내용이 분량의 절반이나 차지하고 있는 것도 못마땅한데 내용에 오류까지 있으니 그 또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네 할미의 싫은 소리가 듣기 싫었는지 자발성 난청이 오더구나. 청력을 상실하니까 네 할미와만 단절되는 게 아니라 바깥세상과도 단절됐어. 그런데 말이야, 역설적이게도 덜 들리니까 더 보이기 시작하더구나. ” –1권, 211쪽

“거지라면 다리 위에서 뛰어내리기라도 하지. 나는 몸이 묶인 채 화끈거리는 등을 침대에 붙이고 온종일 누워만 있는 모습을 한번 상상해 봐. 그런 나를 내려다보면서도 네 할미는 〈여보, 꼭 나을 테니 걱정 말아요, 최고의 의사들이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해주고 있어요〉 하고 입버릇처럼 말했지. 최악의 의사를 만나지 못한 게 한스러웠어, 정말이야! 손에 묶인 가죽끈을 풀어 의사들의 목을 조르고 싶었단다. 라디오를 듣는 게 하나뿐인 낙이었어. 세상과 통하는 유일한 창을 통해 내 몸 못지않게 세상도 퇴락하고 있다는 소식이 온종일 들려왔지.” -1권, 212쪽

211쪽에서 주인공 가브리엘 웰즈의 할아버지 이냐스 웰즈가 청력을 상실*한 사람으로 나오는데, 바로 212쪽에서 하루 온종일 라디오만 듣고 지냈다고 묘사되어 있다. 청력을 상실하여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았다는 사람이 부인의 말을 듣고 온종일 라디오 청취라니.

이런 요소들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는데, 적어도 개미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직접광고도 있다. 끝부분 ‘감사의 말’에는 초고를 읽어줘서 고맙다며 어떤 웹사이트의 주소를 명기했고,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들었던 음악’이라는 별도의 페이지에는 몇 개의 노래제목이 실려 있다. 홍보 내지 지면광고로 느껴졌다.

그나마 흡인력이 있었던 1권은 읽는 재미라도 있었지만, 2권으로 넘어가면서 갈수록 밍밍해지더니 급기야 이야기의 초점이 흐려지는 느낌을 준다. 베르베르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었을까?

그래도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이 작품을 통해 한 가지 위안거리는 확실히 준다. 바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희석된다는 거. ‘죽음’을 읽다 보면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축복일 수도 있다는 안정감을 준다.

몇 가지 점에서 거슬리는 부분은 있었지만 유달리 한국인과 코드가 잘 맞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인지라 조금만 인내심을 발휘한다면 읽는 데 무리 없는 무난한 작품이 아닌가 사료(?)된다.


*자발성 난청으로 청력을 상실한 설정이라 어쩌면 라디오를 청취하는 것이 가능했을 수는 있다.

한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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